[SET_IMAGE]1,original,left[/SET_IMAGE]‘난타’가 처음 만들어진 것은 1997년이다. 대학 때부터 꾸준히 다양한 연극과 뮤지컬을 제작하면서 내가 절감한 것은 우리 공연시장이 너무 협소하다는 점이다. 어렵게 큰돈을 투자해 아무리 멋있는 세트를 짓고 훌륭한 대작을 만든다 한들 그 공연을 올릴 수 있는 여건을 갖춘 극장이 없고, 그 공연을 보러 올 관객이 없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또한 초연에서 흥행에 성공한 공연이라고 해도 겨우 제작비를 건지고 배우 개런티나 챙겨 주는 것이 현실이다. 앙코르 공연에 지방 순회 공연을 해도 늘어나는 인건비와 세트 운송비는 여전히 제작자 몫으로 남는다.
공연을 할수록 우리 공연계에 대한 회의는 더욱 짙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힘들고 어렵게 만든 공연을 왜 단기 공연만으로 접어야 할까.’ ‘우리 공연을 더 많은 사람이 더 오랫동안 보게 할 수는 없을까.’ 그때 섬광처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작품을 제작해 해외로 수출하자. 남들이 못하는, 우리만 만들 수 있는 우리 공연으로 세계 공연시장에 승부수를 던져 보자.’
그 뒤 나는 전용관을 가지고 1년 365일 각국 관객들을 대상으로 10년, 20년씩 공연을 지속하는 브로드웨이의 많은 흥행 뮤지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한 공연을 만들어 내리라고 다짐하게 됐다. 그리고 마침내 그때가 왔다. 나는 세계에 수출할 만한 우리 공연을 기획하기 위해 몇 가지 아이디어를 정리해 보았다.
첫째는 가장 한국적인, 한국인만이 할 수 있는, 한국인이 하기에 특별한 공연이어야 한다. 둘째, 획기적이면서도 낯설기보다 보편적이고 친숙한 소재여야 한다. 셋째, 전 세계 남녀노소 누가 봐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대중적 공연이어야 한다.
가장 한국적이면서도 세계 어디에서 누가 보든 똑같이 이해하고, 똑같이 즐길 수 있는 공연으로 만들기 위해 대사가 없는 비언어극(Non-Verbal Performance)으로 공연 장르를 결정했다. 이렇게 해서 ‘난타’의 뼈대를 완성한 뒤 나는 배우를 뽑아 해외공연의 경험을 차근차근 쌓아 갔다. 그로부터 우리가 꿈꾸던 브로드웨이 무대에 서게 되는 데 장장 7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난타’의 성공적 해외 진출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기획 단계에서부터 철저히 해외 진출을 염두에 두고 스토리를 짜고, 인물을 설정하고, 장르를 선택했다. 그리고 해외 프로모터의 국제적 안목에 의한 다양한 의견들을 적극적으로 수렴해 때로는 불필요한 부분을 과감히 쳐내는 수정 작업을 꾸준히 거듭해 세계시장에서 인정받는 공연을 완성할 수 있었다. 또한 수년간 다양한 나라에서의 공연 투어를 통해 쌓은 해외 무대 경험으로 다양한 나라의 관객들에 대한 융통성과 대처 능력을 키울 수 있었다.
결국 포기하지 않고 한 가지 목표를 향해 꾸준히 노력하고 배우고 변화한 것이 브로드웨이 전용관 개관이라는 꿈을 이룰 수 있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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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