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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집 할머니는 날마다 산에 오른다. 산언덕에 고구마 밭이 있기 때문이다. 동화책에나 나올 법한 이 꼬부랑 할머니는 올해 여든 살을 넘겼지만 수줍음도 눈물도 많은 아직 어린 소녀 같다.
그런데 사실은 이 할머니가 날마다 고구마 밭에 가는 것은 그 밭 가까이 지난 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무덤이 있기 때문이다. 무덤가에 앉아 하염없이 흐르는 섬진강을 내려다보며 우는 듯 속삭이는 듯 그렇게 한참을 앉았다가 담배 한 대를 피우고는 산을 내려온다. 나는 그저 아무 말도 못하고 강변 벚나무 그늘 아래 숨어 숙연해지는 마음을 달랠 뿐, 저 도저한 슬픔을 어찌해 볼 도리가 없다.
돌아가신 할아버지는 이 마을에 데릴사위로 들어와 할머니와 더불어 60년을 살았다. 여섯 가구밖에 살지 않는 죽마리 마고실을 단 한 번도 떠나 산 적이 없으며, 결혼 50주년의 금혼식을 넘어 60주년인 금강혼식(金剛婚式)을 맞이하고서야 돌아가셨으니 어찌 보면 여한이 없을 듯도 하다.
그러나 할머니의 사랑과 슬픔은 청춘남녀의 격렬한 사랑보다 더 깊고 슬퍼 보인다. 이미 돌아가신 지 오래지만 할아버지의 무덤가에서 노을 지는 섬진강을 내려다보는 할머니는 어느새 이승과 저승을 넘나들며 날마다 그를 만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객지에 나가 출세한 자식들이 모시려고 해도 할머니는 요지부동이다. 아직도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이름으로 배달되는 고지서나 종친회 안내문 등을 흐린 눈으로 읽으며 할아버지의 부재를 도저히 믿지 않는 눈치다.
“60년을 함께 살았응께, 한결같이 살다가 죽을 때도 같이 죽을 줄 알았당께.”
이런 심사의 할머니에게 나는 별로 해드릴 위로의 말도 찾지 못해 그저 나의 네 번째 시집 <옛 애인의 집>을 할머니 집 툇마루에 슬그머니 놓아두고 왔다. ‘먼길’이라는 시가 실려 있는 63쪽을 살짝 접어둔 채. 바로 그 시는 할아버지의 장례식을 도우며, 또 할머니의 깊은 슬픔을 엿보며 쓴 것이기 때문이다.
돌담 위의 굴뚝새야
앞 도랑의 버들치야
(중략)
저승길이 대문 밖이니
인연이 다했다고
발 동동 구르지 마라
먼저 가서
기다리는 사람들
저 세상에
더 많지 않겠느냐
며칠 후 도회지의 행사에 참석했다 집에 돌아와 보니 툇마루 위에 검정 비닐봉지 하나가 있었다. 봉지 속에는 막걸리 한 병과 돈 1만 원, 그리고 풋고추가 들어 있었다. 할머니가 흐린 눈으로 그 시를 읽어보았는지 알 길이 없지만, 할머니는 기어코 무언가 감사의 표시를 한 것이다.
시를 20여 년간 써왔지만 처음으로 독자에게 직접 받은 책값 1만 원을 돌려주지도 못한 채, 나는 강변으로 나가 풋고추 안주에 막걸리를 마셨다. 무덤가의 할머니처럼 눈시울을 붉히며 내내 섬진강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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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