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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봄은 봄입니다.
내내 겨울 나무들의 법문을 듣다가 문득 눈을 뜨니 어느새 매화나무가 꽃망울을 터뜨리고, 여태 갈아입지 못한 겨울옷이 영 어색하기만 합니다.
그동안 내게 스승이 있었다면 그것은 해마다 늦가을이면 출가를 하는 세상의 모든 나무들이었지요.
스스로 삭발을 하듯 열매며 나뭇잎을 다 떨어뜨리고 단식을 시작하는 겨울나무들. 새들이 날아와 울어도, 삭풍이 마구 흔들어도 나무는 이미 입산한 사문이자, 나의 스승이었습니다. 언제나 장좌불와(長坐不臥) 수행 중인 나무들의 설법을 들으며 언 땅에 무릎을 꿇을 뿐이었지요.
문득 옛 얘기 하나가 떠오릅니다.
신라의 고승 원효 대사도 한때는 뻔한 이치를 모르는 어리석은 이였다지요.
원효 스님이 어느 날 대안 대사를 만나러 갔더니, 어미 잃은 너구리 네 마리를 보살피고 있었습니다. 대안 대사는 원효 스님에게 마을에 내려가 젖을 얻어 올 테니 그동안 너구리 새끼들을 보살펴달라며 급히 길을 떠났습니다.
하지만 그 사이에 새끼 한 마리가 굶어 죽고 말았지요. 원효 스님은 굶어 죽은 너구리가 너무 가엾어 극락왕생하라고 아미타경을 읽어주었습니다.
그때 황급히 돌아온 대안 대사가 원효에게 무엇을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이놈의 영혼이라도 왕생하라고 경을 읽는 중입니다.”
그러자 대안 대사가 헛웃음을 치며 말했습니다.
“이미 죽은 너구리가 그 경을 알아듣겠습니까?”
“큰스님, 그러면 너구리가 알아듣는 경이 따로 있습니까?”
대안 대사는 얼른 너구리에게 젖을 먹이며 말했지요.
“이것이 바로 너구리가 알아듣는 아미타경입니다.”
그때서야 원효 스님은 무릎을 치며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우쳤다고 합니다.
그렇지요. 바로 이러한 깨달음이 일용할 양식이 아닌지요.
어쩌다보니 시인이나 환경 또는 생명평화 운동가라는 이름표가 내 옷자락에 붙어있지만 그것은 그저 허명의 이름표일 뿐입니다.
그동안 저잣거리를 뛰어다니면서도 만물동근(萬物同根)의 한 생각이 나의 밑천이었습니다. 굳이 유마경을 빌리지 않더라도 그가 죽어가니 나도 죽어가고, 그가 아프니 나도 아플 뿐입니다. 죽어가는 그와 나를 위해 누가 아미타경을 읽어주겠습니까.
나는 오늘도 지리산의 푸른 눈빛을 바라보며 마음을 다집니다.
어미 잃어 굶주린 너구리 새끼를 위해서라면 나는 그를 위해 한 방울의 젖이 되기를 주저하지 않겠다고 말입니다. 이 세상에 꼭 필요한 한 방울의 젖이 되는 것이 곧바로 내가 나를 위해 읽어주는 아미타경일 것이라고 말입니다.
굶는 이에게는 따뜻한 국밥 한 그릇이 아미타경이며, 매화꽃에게는 따스한 남풍과 봄비가 바로 아미타경입니다.
[RIGHT]<시인>[/RIGHT]
[B]아미타경(阿彌陀經)[/B] : 정토 삼부경의 하나. 아미타가 있는 극락정토의 장엄함을 예찬하고, 아미타불을 외어 극락정토에 왕생하기를 권한 경전
[B]유마경(維摩經)[/B] : 유마 거사와 문수 보살이 대승(大乘)의 깊은 뜻에 대해 문답한 내용을 기록한 대승불교 초기의 경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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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