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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마당의 매화 꽃망울에 한층 생기가 도는 지리산 문수골의 아침입니다. 깊은 골짜기엔 겨울잠의 반달곰들이 아직도 코를 골겠지만 경칩이 오기도 전에 산개구리들이 벌써부터 울어댑니다.
마음의 눈과 귀를 열고 보면 내 몸에도 고로쇠나무의 물이 오르고 이미 봄이 성큼 다가와 있습니다. 호젓이 산중에 살다보면 누구나 마음의 표정이 ‘스스로 그러한’ 자연 그대로가 되는가 봅니다.
산중의 가까운 벗들이나 먼 곳의 소중한 인연들이 놀러오면 우선 차를 한 잔 대접하든지 더불어 유쾌하게 술을 마십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차를 마실 때와 술을 마실 때의 풍경은 사뭇 다릅니다.
지리산 녹차에 매화꽃 한 송이라도 띄워서 마시는 자리는 그야말로 야생차밭과 섬진강변 매화나무의 풍경이 어우러지는 듯 마주 보는 얼굴과 눈짓이 녹차와 매화의 향기처럼 그윽해집니다. 표정과 눈짓이 그러하듯이 주고받는 말 또한 그러합니다.
굳이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이심전심으로 알아듣게 될뿐 아니라 굳이 논쟁을 하더라도 상대를 배려하면서 동의를 구하거나 그저 묵묵히 듣는 것만으로도 긍정 혹은 훌륭한 반론이 됩니다. 말 하는 이와 듣는 이가 이미 마음을 열어 놓고 주고받으니 교집합은 늘어나고 차집합은 줄어들게 마련이지요. 누구나 상대를 배려하고 겸허해지는 경청의 자세를 잃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술을 함께 마시다보면 유쾌하면서도 이따금 자기만의 감정에 빠지기 쉽습니다. 다행히도 취기의 솔직담백한 토로나 노래가 된다면 좋으련만, 한번이라도 일심동체의 호방함에서 옆길로 새기 시작하면 험담이 오가고 욕설이 난무해집니다.
제 아무리 이성적인 논쟁도 서로에게 비수를 들이대는 상처의 말들이 방안을 가득 채우고, 이 세상의 말들은 모두 무시되고 아집과 이기적인 자기만의 말들이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못한 채 허공을 떠돌게 됩니다. 말이 넘쳐나 충돌하다보니 술자리는 어느새 아수라장이 되기 십상입니다.
그렇습니다. 말은 곧 마음의 표정입니다. 아름다운 매화꽃을 보며 욕을 하거나 험담을 하는 이는 없겠지요. 한 번이라도 애지중지 강아지를 키워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함부로 ‘개○○’ ‘개 같은 ○’이라는 욕을 쓰지 않습니다. 가족이나 친척 중에 장애인이 단 한 명이라도 있다면 그 역시 ‘병신’ ‘또라이’ ‘문둥이’ 등과 같은 욕을 하지 않습니다.
바로 마음의 표정 때문입니다. 식물이든 짐승이든 사람이든 사랑과 연민의 정으로 모두가 하나라는 사실을 나날이 깨우치고 있다면 절대 용납될 수 없는 말들이지요.
그러나 이 세상의 말들은 참 많이도 오염되었습니다. 그만큼 마음의 표정, 그 거울이 더러워졌다는 말이지요. 전쟁과 대립과 갈등의 세월이 마음을 병들게 하고 말 또한 욕이 되었습니다. 욕을 먹으면 오히려 마음이 편해지는 이상 증후군까지 나타났습니다.
지리산 녹차 한 잔을 마시며 내 마음의 표정을 들여다봅니다. 침묵과 경청의 자세로 세상을 휘휘 둘러봅니다. 내가 알지 못하는 섬진강변 매화나무 아래 아무도 봐주지 않는 앉은뱅이꽃들이 막 피어나고 있을 것입니다. 단지 내가 모른다고 해서 그것이 어찌 음모이겠습니까? 나 또한 누군가에게 그러하기 때문입니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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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