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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T_IMAGE]3,original,left[/SET_IMAGE]가던 길을 잠시 멈추고 그대의 시린 맨발에 입을 맞추고픈 겨울밤입니다. 아무래도 사랑한다는 것은 오체투지의 자세로 낮게낮게 엎드려 그대의 발등에 입을 맞추는 일, 이보다 더 지극한 마음이 있을까요. 같은 하늘 아래 이렇게 살아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가슴 벅찬 연민, 이 소중한 연민의 사랑이야말로 또 하루를 살게 하는 ‘정신의 흰 밥’입니다. 수직적인 관계의 동정이 아니라 존재 자체의 수평적 연민, 이는 종교보다 더 높은 것이 아니겠는지요.
저물녘 섬진강에 다녀왔습니다. 그곳에서 청둥오리 떼를 만났지요. 강물을 박차며 날아오르는 새떼를 보면서 문득 나도 한번 날아보고 싶었습니다. 훠이훠이 날아서 강을 넘고 산을 넘어 당장에라도 그대에게 가고 싶었습니다. 북풍한설의 기나긴 밤, 그대와 따뜻한 차라도 한잔 나누고 싶었습니다.
아, 그러나 청둥오리의 빛나는 날개에 넋이 빠졌다가 문득 뒤로 쭈욱 뻗은 두 다리를 보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저 다리가 없다면 새들이 어찌 날아오를 수 있겠는지요. 그동안 온통 시기심에 빠져 새들의 날개만 생각했을 뿐 새들의 맨발에 대해서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랬지요. 강물을 박차며 날아 오르는 청둥오리의 시린 두 발, 겨울 창공을 가르는 두 맨발을 바라보며 어쩌면 뼛속까지 차가울 그의 발등에 문득 입을 맞추고 싶었습니다.
그대의 두 발은 오늘도 여여하신지요. 하루 종일 헤엄을 치느라 고단했을 청둥오리의 차가운 물갈퀴, 신발이나 양말도 신지 않은 그 두 발을 바라보며 그대의 발 또한 그러하리라 생각했습니다. 오늘 같은 밤엔 잠들기 전에 모든 것을 내려놓고 세숫대야에 따뜻한 물을 받아 족탕을 하면 참으로 좋겠지요. 뜨겁지 않을 정도의 물에 두 발을 담그고 이마에 살짝 땀이 날 때까지 기다리면 그것이 바로 몸살 기운을 잠재우는 것이요, 막힌 기를 여는 것입니다. 먼저 내 몸의 기가 막히지 않아야 타인과의 소통이 가능하겠지요.
양말을 벗고 두 발을 봅니다. 참 못생긴 발이지만 머나먼 길을 돌고 돌아서 예까지 묵묵히 함께 한 두 발을 만져봅니다. 두 눈으로 볼 것 못 볼 것 다 보는 동안, 두 손으로 누군가의 손을 잡고 또 뿌리치는 동안, 두 귀로 들을 것 못들을 것 다 듣는 동안, 한 입으로 먹고 또 먹으며 할 말 안 할 말 다 하는 동안 두 발은 두터운 양말과 신발 속에서 부르트고 또 부르트기만 했습니다.
이제야 족적이나 발자취라는 말의 뜻을 알겠습니다. 인생을 한 마디로 얘기한다면 족적이 아니겠는지요. 우리가 자주 잊고 사는 ‘발의 기억’이 바로 인생의 나이테입니다. 발의 기억을 따라가면 우리의 인생살이가 훤히 보입니다.
내가 쓰는 지금의 이 편지는 머리와 심장과 손으로 쓰는 듯하지만 사실은 발의 기억의 일부요, 발로 쓰는 족필(足筆)입니다. 이 세상에 족필보다 더 좋은 붓은 없습니다. 이 세상에 가장 아름다운 글은 족필로 쓰는 것이요, 그 족필의 문자는 두 발로 걸어서 가는 길의 문자입니다. 이 세상에 새겨진 오솔길이야말로 우주적인 문장이 아닐는지요.
날이 많이 찹니다. 가던 길을 잠시 멈추고 그대의 시린 맨발에 입을 맞추고픈 겨울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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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