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T_IMAGE]2,original,left[/SET_IMAGE]2년 전 , 귀국하기 전까지 미국생활 5년 동안 ‘미국 사람, 미국 문화 별것 아니네’라며 나름대로 한국적인 것에 자만과 호기를 부렸던 내게 작은 열패감을 심어준 사건(들)이 지금도 생생하다.
적어도 내게는 미국 햄버거와 피자가 한국 사람이 개발한 불고기버거나 김치피자보다 훨씬 못하고, 미국의 상업텔레비전 프로그램은 한국의 방송들에 비해 너무 저질이어서 못 봐줄 정도였다고 자신만만해 있었다. 내가 미국 대학에서 전공한 언론과 대통령제도 역시 투입된 예산과 인력을 감안하면 한국에 비해 그리 우수한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정작 나의 자존심을 주눅들게 만든 ‘사건’은 만학의 피로를 달래려고 가끔 찾던 콘서트 홀과 명사 초청 강연장에서였다. 템포가 느린 클래식 공연과 자칫 지루해지기 쉬운 강연이었지만 수백 석에 이르는 좌석은 언제나 평소 길거리나 대학 캠퍼스에서 보기 어려웠던 중산층 미국인들로 가득 찼다.
비싼 공연에 대한 허영이나 허식이 아닐까 하는 의심은 관객의 거의 절반이 백발 노인인데다 그들의 수수한 옷차림, 그리고 강연장에서의 질문과 토론 내용을 보고 금방 사라졌다. 공연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공연도 많았지만, 강연회에 초청된 명사는 유명 정치인이나 대중적 스타라기보다 환경·여성·인권 등에서 고난의 시민운동을 수행해 온 사람이 많았다. 사람들은 듣고 생각하기 위해 모였던 것이다.
언젠가 내게 삶의 교훈과 지혜, 영감을 던져준 언론인 빌 모이어(Bill Moyers)의 강연장을 찾았다. 그는 대단한 특종기사를 많이 썼고 정치적 파장이 큰 칼럼을 기고해 명사로 초청된 것이 아니었다. 사회자는 모이어를 초청한 이유를 “그는 미국인들이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를 알려준 언론인이기 때문”이라고 소개했다.
마침 얼마 후 미국 공영방송(PBS)에서 모이어가 만든 다큐멘터리가 방영됐는데, 나는 신선한 충격에 한동안 넋을 잃었다. 4부작으로 방영된 특집의 주제는 ‘죽음과 함께 살아가기(Living with Dying)’였다. 삶을 위한 삶에서 우리는 과연 삶의 지혜를 얻을 수 있을까?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들의 자세를 통해 모이어는 삶의 근원적 지혜를 말하고 있었다.
2년 전, 5년 만에 귀국해 보니 한국에는 전에 없던 웰빙 바람이 불고 있었다. 1970년대 ‘잘살아 보기’ 운동으로 배불리 먹고살게 된 한국인들은 이제 마음먹고 ‘제대로 잘살아 보기’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그럼에도 웰빙 바람은 어딘지 공허하다. 웰빙은 어느새 한국인 특유의 성과주의와 결합해 우리가 세계 일등 웰빙 국민이 되고 웰빙 수출국이 돼야 직성이 풀릴 것 같아 위태롭기까지 하다.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한 삼성, 영국 프리미어리그의 축구 스타가 된 박지성, 미국 유명 대학에 수석 합격하거나 졸업한 한국인 학생, 그리고 아시아 각국에 수출되는 한류…. 한국인이 최근 이뤄낸 일들은 분명 우리를 기분 좋게 한다.
그러나 한국 사람들은 많은 성취 앞에서도 여전히 공허하고 권태롭다. 삶을 위한 삶만을 추구했기 때문은 아닐까? ‘기쁨의 우물은 고통의 삽으로 판다’고 했다. 진정한 풍요를 누리는 것은 가난한 마음이다. 행복한 삶은 죽음에 대한 성찰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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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