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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꽃에 취해 몸과 마음이 덩달아 달뜨다 보니 어느새 4·19 지나 5월입니다. 봄날 아침 퍼뜩 정신을 차리게 한 것은 배롱나무였지요. 백일홍이라 부르는 이 나무는 덩달아 달뜬 나에게 진정제 같은 것이었습니다. 매화꽃이며 산수유꽃이며 진달래꽃이 여전히 ‘미완의 혁명’으로 피어나고 있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일종의 각성제 같은 것이었지요.
섬진강변 벚꽃축제가 끝나자 마구 꽃잎이 날리고 잎이 나고 ‘진달래 산천’이 되어도 백일홍나무는 묵묵부답이었습니다. 봄꽃들의 잔치가 끝난 뒤에야 밤나무며 모과나무가 슬슬 연초록의 여린 입술을 내밀어도 이 나무만은 마치 죽은 듯이 죽은 듯이 동면의 겨울나무로 서 있었지요. 맨살의 온몸으로 혹독한 겨울을 나지만 봄이 와도 아직은 봄이 아닌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봄에 가장 늦게 잎을 내밀지만 여름 한낮의 뙤약볕 아래 100일 동안 꽃을 뿜어내는 그 저력, 이것이야말로 마치 독학의 만학도처럼 함부로 휘둘리지 않고 때를 기다리는 결기가 아닐까요.
아무래도 백일홍은 일순간 미완의 혁명이 아니라 끊임없이 개혁의 완성을 꿈꾸는 꽃입니다. 화려한 작심삼일이 아니라 담배를 끊어도 석 달 열흘은 끊어야 그 가능성이 보이고, 기도를 해도 백일기도는 해야 뭔가 깨닫지 않겠는지요.
백일홍나무 아래서 민족시인 신동엽 선생을 생각합니다. 김수영 시인을 떠올립니다. ‘4월은 갈아엎는 달’이라고 명명했던 신동엽 시인의 유작들과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바람보다 먼저 일어나’는 김수영 시인의 명시 ‘풀’을 읊조려 봅니다. 두 시인 모두 불운하게도 나이 마흔의 경계에서 봄꽃처럼 화르르 죽어갔지만, 그들의 정신은 백일홍의 끈질긴 결기를 닮아 있습니다. 특히 신동엽 시인의 산문 ‘서둘고 싶지 않다’를 읽어 보면 더욱 그러합니다.
‘그 때 배 옆을 지나가는 넓은 벌판과 먼 산을 바라보며 시와 사랑과 혁명에 대해 생각했다/내 일생을 시로 장식해 봤으면/내 일생을 사랑으로 장식해 봤으면/내 일생을 혁명으로 장식해 봤으면/세월은 흐른다. 그렇다고 서둘고 싶진 않다.’
그렇습니다. 세상 모든 일이 그러하겠지만 서두르기만 한다고 될 일은 없지요. 향기도 없이 화사하게 피었다가 화르르 지고 마는 벚꽃도 아름답기야 하지만, 그것만을 꿈꾼다면 일종의 도박이 아니겠는지요. 화사한 벚꽃나무 아래서 봄을 만끽하다가도 문득 묵묵부답의 백일홍나무 아래 서 보는 것, 바로 그곳에 진정한 봄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SET_IMAGE]3,original,left[/SET_IMAGE]일명 간지럼나무라 부르기도 하는데, 잎과 꽃이 무성한 이 나무의 밑동을 손가락으로 간질이면 가지 끝의 이파리들이 파르르 떨기 때문입니다. 묵묵부답의 나무인 것 같지만 사실은 나무 중에서 가장 예민한 나무이지요. 스스로 욕망의 짐을 벗어버리듯 나무껍질을 하나씩 벗겨내며 언제나 맨살의 알몸으로 서서 세상과의 교신, 그 예감이라는 안테나의 주파수를 조절하고 있는 것입니다.
둘러보면 곳곳에 마치 죽은 듯이 죽은 듯이 제일 늦게 봄을 맞이하는 배롱나무가 있습니다. 서두르지 않고 온몸의 세포들을 일깨우며 때를 기다리는 목백일홍나무가 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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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