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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T_IMAGE]3,original,right[/SET_IMAGE]지리산에도 봄이 왔습니다.
살아있음의 징표인 들숨 날숨의 한순간에 다시 하늘이 열리고 매화 꽃망울이 터집니다.
섬진강의 황어 떼를 따라 지리산에 봄이 오면 나는 미점마을에 갑니다. 매화마을보다 더 고적한 이 마을의 매화나무 꽃그늘에 앉아 굽이굽이 감도는 섬진강을 내려다봅니다.
꽃을 보며 매실을 생각하고, 급기야 매실주가 익을 무렵을 생각하면 또 한 해가 시큼해지고 넉넉해질 수밖에요. 술을 담근다는 것은 한 포기의 꽃을 심거나 한 그루의 나무를 심는 것과 같습니다.
기다릴 줄 아는 마음 때문일까요. 마침내 기다림의 여유를 깨우치고 나면 나날이 서두를 게 없고, 마음의 병도 생기지 않습니다. 술이 익는 동안 그토록 격하던 마음마저 서서히 발효가 되기 때문이겠지요. 지난해에도 몇 가지 과실주를 담갔습니다. 봄에는 매실주를 담그고, 여름엔 비파주를 담그며 술병에다 날짜와 이름을 써넣었지요.
물론 그들은 이 사실을 까맣게 모를 겁니다. 그들에겐 한 번도 알리지 않고 나 혼자 그리운 이름을 써넣으며 좋은 기억들로 빚어진 술을 담갔기 때문이지요.
추석 직후에는 빗점골에 가서 다래를 따와 술을 담그고, 섬진강변 마고실의 옛집 마당에 파라솔처럼 자란 어름나무에서는 열일곱 개의 어름으로 술을 담갔습니다. 그때도 술병에 날짜와 이름들을 써넣었지요. 내가 가장 존경하는 원로 시인의 이름도 써넣고, 만나지 않아도 언제나 마음이 훈훈해지는 선배 문인과 서울의 술친구 이름도 써넣었습니다.
시대의 한 하늘 아래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축복인 사람들의 이름 사이에 이승의 악연일 수밖에 없던 이름들도 슬며시 끼워 넣었지요. 그 누구도 나의 술병에 자신들의 이름이 나란히 올라있다는 사실을 모를 겁니다.
또 굳이 알 필요도 없겠지요. 단지 술이 익어가는 동안 꼭 만나지는 않더라도 나와의 관계 또한 술처럼 발효될 것을 바랄 뿐입니다. 애써 초청하지 않더라도 술은 익어가고, 행여 내가 그들을 까맣게 잊은 날도 술은 익어갈 것이며, 나 혼자 그리움에 절절 매더라도 술은 익어가겠지요.
올해도 매실주를 담가야겠지요. 그리고 언제나 술을 담그는 마음으로 살아야겠지요. 그 술을 누가 마신들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살다 보면 악연마저도 오래 묵은 발효의 술이 되어 숙명적인 인연이 될 수도 있으리니. 술병 속에서 과실주가 발효되듯이 우리의 인간사도 우주의 아주 작은 병 속에서 발효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걸어 다니는 매실주요, 모과주요, 머루주입니다. 세상을 둘러보면 발효의 시간 속에서 나날이 향기 그윽해지는 사람들이 신생의 봄을 맞고 있습니다.
[RIGHT]<시인>[/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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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