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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따금 나도 모르는 사이에 사람들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는 습관이 있습니다.
대화할 때도 주로 경청의 자세를 취하는데, 이는 책을 읽거나 얘기를 듣는 것보다 사람의 얼굴을 읽는 것이 훨씬 더 재미있기 때문입니다. 책은 이따금 오독을 하더라도 당장은 뒤탈이 없지만, 상대의 얼굴을 오독해서는 곧바로 곤란해지기 십상이지요.
그러나 책보다 읽어내기가 힘든 것이 바로 사람의 얼굴이 아닌지요.
어떤 이는 나의 얼굴에서 눈물을 읽고, 어떤 이는 나의 얼굴에서 역마살의 바람을 읽고, 어떤 이는 또 봄날의 푸른 산기운을 읽기도 합니다.
그러면 나도 어느새 그들의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보며 생각하지요.
사람들은 누구나 얼굴이라는 백과사전 한 권씩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을. 하루하루 그 분량을 늘려가는, 말하자면 수시로 업그레이드되는 인생이라는 백과사전 말입니다.
나이 마흔이 넘으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질 줄 알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사주·관상을 그리 믿는 것은 아니지만, 부인할 수 없는 선험적 코드가 엿보이는 것 또한 사실이지요. 이는 잘나고 못난 것의 차이가 아닙니다. 얼굴에 편안함이 깃들어 있으면 그 사람이 아주 오래된 친구처럼 편하게 느껴지고, 아무리 날카로운 인상의 얼굴일지라도 자주 웃는 모습이 인상적이면 그것으로 그 날카로움은 상쇄되지요.
얼굴이라는 책은 그만큼 전염성이 강합니다. 오래 관심을 가지고 바라보면 그의 눈짓 하나 하나의 의미를 읽을 수 있지요. 상대에 대한 독해는 그의 말 이전에 얼굴에서 먼저 실마리를 찾을 수밖에 없습니다.
지난날의 풍경이나 미래마저 그의 얼굴을 통해 유추할 수 있지요.
우리는 살아가면서 이 세상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참으로 어려운 독서를 하고 있습니다. 이따금 그 얼굴을 벗겨보면 또 다른 표정이 도사리고 있지요. 얼굴이 곧 가면이고 가면이 곧 얼굴일 때 누군들 당황하지 않겠는지요. 이러한 중층구조의 얼굴을 잘 읽지 못해 우리는 자주 상처를 입게 됩니다.
하지만 얼굴이라는 텍스트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거짓의 풍경은 사실 들어설 자리가 없습니다. 되새김질하며 읽기도 전에 그만 선입견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문제가 생길 뿐입니다.
우리가 책의 제목만 보고 단정해 버리거나 마치 다 읽은 것처럼 착각하기도 하는데, 얼굴을 읽는 법 또한 이와 별반 다르지 않지요.
이따금 지치고 지칠 때 시집을 읽어주는 여자의 아름답고 평화로운 얼굴을 보고 싶습니다. 그녀가 읽어주는 시집보다 그 여자의 얼굴이라는 책을 천천히 음미하며 읽고 싶은 것이지요.
우리 모두 읽던 책을 잠시 덮읍시다.
그리고 옆 사람의 얼굴을 차분히 들여다봅시다. 바로 그 얼굴 속에 함께 가야할 ‘오래된 미래’가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몽골의 어느 오지 마을에서 만난 유목민의 어린 딸, 그 소녀의 얼굴을 잊을 수 없습니다. 혹 우리가 잃어버린 표정이 아닌지 자꾸 반문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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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