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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집 안 되는 조용한 마을에 어디선가 호루라기 소리가 울려옵니다. 마고정이라는 정자 아래 섬진강 변으로 초등학생들이 가을소풍을 온 것이지요. 까맣게 잊고 있던 어린 시절 소풍의 기억들이 나를 설레게 합니다. 아이들의 함성소리에 일손을 놓은 할머니들이 하나 둘 마고정으로 모여들었습니다. 강변을 뛰어다니는 손자 손녀들을 바라보는 표정들이 모처럼 환해졌지요. 할머니들이라고 어린 시절의 추억이 없을까요. 모두들 소녀처럼 웃으면서도 눈가에 촉촉한 그 무엇이 비치었습니다.
뒷집 할머니는 지난봄에 할아버지를 먼 곳으로 보냈습니다.
함께 이 마을에서만 꼭 60년을 살아 금강혼식을 치렀으니 얼핏 생각하기에 여한이 없을 듯도 한데, 그게 아니었지요. 섬진강이 내려다보이는 고구마밭 옆에 할아버지를 묻어놓고 아침저녁으로 다녀옵니다.
밭일을 나가도 먼저 할아버지 무덤에 들러서 안부를 묻고, 일을 마치고 돌아올 때도 그 무덤 옆에 앉아 하염없이 섬진강을 내려다보곤 합니다. 봄이 가고 여름이 가고 어느덧 가을인데도 한결같습니다.
아직 젊은 내가 뒷집 할머니의 그 쓸쓸하고 외로운 심사를 어찌 다 헤아릴 수 있겠는지요.
“함께 육십을 살다봉께, 한몸이여. 영감이 먼저 갔다능게 안적 믿기지 않는당께. 종친회 같은디서 영감 앞으로 핀지가 옹게, 절대루 죽은 게 아니랑께.”
그렇지요. 그런 것이지요. 요즘 세상이야 이별도 쉽고 만남도 쉽다보니 헤어지면 그만이지만, 할머니는 일평생 한 번의 만남에 꼭 한 번의 이별이었으니 어찌 그렇지 않겠습니까. 죽어도 죽은 게 아니라 살아 있는 것이겠지요. 고구마를 캐도 영감과 함께 캐고, 감이 익어도 영감과 함께 익어갑니다.
소풍 온 아이들이 김밥을 먹고, 마침내 보물을 찾느라고 난리가 났습니다. 돌을 들추어보고, 풀밭을 살피며 이리저리 강아지처럼 뛰어다닙니다. 하나라도 보물을 찾은 아이들이야 펄쩍펄쩍 뛰지만 그렇지 못한 아이들은 금세 새침해져서 울 것만 같습니다. 할머니들은 환하게 웃으면서도 “아이고, 이를 어째, 이를 어째” 혀를 찹니다.
어째서 보물찾기는 공평하지가 않은지요. 언제나 못 찾는 아이들이 더 많고, 내 어린 시절의 보물찾기도 끝내 허탕이었지요. 금방 잊어버리기는 했지만 당시에는 얼마나 서운하고 또 서운했는지요.
내 인생을 돌아보아도 보물찾기는 어린 시절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겨우 시인이 되었으니 시가 나의 보물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보물 또한 인생을 걸어도 찾기가 만만치 않습니다.
팔순이 넘은 뒷집 할머니는 일생의 보물인 할아버지와 더불어 60년을 살고, 그러고도 저리 한스러워 하는 것에 비하면 나의 보물은 찾았다고 하지만 아무리 갈고 닦아도 여태 빛나지 않는 돌덩이입니다.
소풍 왔던 아이들이 돌아가고 마고실은 다시 적막에 휩싸였습니다. 굴뚝마다 아궁이에 군불 지피는 저녁연기가 피어오르고, 그 연기를 따라 오르는 것이 어찌 덧없는 인생뿐이며, 말 못할 그리움뿐이겠는지요.
우리들의 즐거운 소풍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방아풀꽃을 찾아 먼 길을 날아온 긴꼬리제비나비처럼 그대를 찾아가고픈 가을입니다.
[RIGHT]<시인>[/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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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