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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T_IMAGE]3,original,left[/SET_IMAGE]창덕궁은 정해진 시간에 안내를 받아 둘러볼 수 있다. 이곳에서 나는 6년째 일본어 관광안내원으로 일하고 있다.
얼마 전의 일이다. 한 일본 관광객이 창덕궁에 오려고 택시를 탔는데 내려 보니 엉뚱한 곳이었다고 했다. 한참을 헤맨 끝에 간신히 도착해 보니 이번에는 입장시간이 지났다고 해 오랫동안 기다려야 했다며 내게 거세게 항의했다.
얘기를 들어보니 택시기사가 아마 창경궁에 내려준 듯했다. 우리나라 궁궐 가운데 유일하게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창덕궁’이 아직도 ‘비원’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바람에 일어난 소동이다. 더 심하게는 ‘창경원’으로 오해되기도 한다.
그 일본 관광객이 관람안내 책자를 택시기사에게 통째로 보여줬다 해도 창덕궁의 ‘창’자만 보고, 비원의 ‘원’자만 보고는 자신 있게 창경궁에 내려줬을 게 눈에 보이는 듯하다.
창덕궁의 건축공간은 5만여 평에 이르고, 그 뒤쪽으로 10만여 평의 넓은 동산을 갖고 있다. 이 동산은 건물 뒤쪽에 있다고 해서 ‘뒷동산’이라는 의미의 후원으로 불리다가 1903년 후원을 관리하는 관청으로 비원(秘苑)을 설치한 후 1908년부터는 아예 비원이라고 부르게 됐다고 한다. 그러니까 ‘비원’은 창덕궁 후원의 별칭이다. 그런데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우리에게 창덕궁이란 궁궐의 이름은 낯설어지고 ‘비원’이 더 친숙해졌다.
우리말로 안내하는 시간에도 가끔 아연해지는 순간이 있다. 창덕궁 후원에서 열심히 안내를 하는 중임에도 마지막에 자주 받는 질문이 있다. “비원은 언제 가요?”
가끔 옆에서 걷고 있는 관람객의 전화기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를 듣게 되는 경우도 있는데 저쪽의 질문 내용이 아마 거기가 어디냐는 것 같다. 그 대답은 “응! 여기 창경궁….” 그러면 곧바로 이어지는 나의 절규! “아이고! 여기는 창덕궁입니다.”
창덕궁은 1976년까지는 다른 궁궐과 마찬가지로 자유롭게 입장해 관람할 수 있었다. 그러나 훼손이 심각해져 1979년까지 문을 닫았다가 다시 개방해 제한관람으로 운영하고 있다.
일본어 안내는 2시간 간격으로 짜여 있어 시간을 잘못 맞추면 1시간 이상 기다려야 한다. 더구나 정해진 코스를 정해진 시간에 관람해야 하기 때문에 한가한 공원 같은 느긋함을 원하는 관람객과는 맞지 않은 곳이다.
그러나 창덕궁은 이렇게 많은 이들의 이해와 사랑을 거름으로 30여 년 동안 운영됐고 지금은 서울의 한복판에 마치 조개 속의 진주와 같이 빛나는 존재로 보존되고 있다. 보존만을 위한 보존은 의미가 없다. 온전히 보존된 상태를 전제로 이제는 우리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줄 수 있는 ‘작업’을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제한적이지만 이미 시작은 됐다. 옥류천 코스와 낙선재 코스 등의 특별코스 개발이나 주1회 자유관람이 가능해졌다. 머지않은 장래에 우리는 ‘창덕궁’이라는 보석을 원하는 관점에서 얼마든지 즐기고 감탄할 수 있을 거라고 자신한다.
“그래도 이렇게 아름다운 궁궐을 보았으니 다행”이라는 그 일본인의 마지막 말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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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