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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덮인 지리산이 부르고 있습니다.
춥고 배고프고 힘겹고 외롭고 높은 겨울산, 저 산은 이제 우리들 ‘정신의 희디흰 밥’입니다. 정신없이 앞만 보고 뛰다가 문득 돌아보면 저 눈 덮인 겨울산은 있는 그대로가 무욕의 스승이자 ‘돌아온 탕자들’의 안식처가 아니겠는지요.
그리하여 사계절 중에서 겨울산이 던지는 화두는 더없이 각별합니다. 봄과 여름과 가을의 산은 자연 그대로의 풍요로움으로 이끌지만 겨울산은 조금의 흐트러짐도 용납하지 않는 엄격한 스승처럼 맵고도 차가운 회초리를 듭니다.
행여 아무 반성도 없이, 삶의 되새김질도 없이 마음 편히 잘살 수 있다거나 그 매섭고도 무서운 정신의 회초리가 두렵다면, 일찌감치 겨울 산행을 포기하고 가던 길 그대로 가는 것이 차라리 속 편하겠지요.
그러나 어찌 저 겨울산의 희디흰 정신의 유혹을 뿌리칠 수 있겠는지요. 누구나 한번쯤 꿈꿔 보는 히말라야는 아니더라도 아주 가까이 눈 덮인 겨울산들의 부름에 화답을 해야 할 때가 온 것입니다.
다만 하나의 조건이 있다면 등산(登山)은 말고 입산(入山)하러 가시길.
등산은 인간의 정복욕과 교만의 길이지만 입산은 자연과 한 몸이 되는 상생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정복해야 할 것은 마음 속 욕망의 화산(火山)이지 몸 밖의 산이 아닙니다.
마치 속세에서처럼 경쟁하듯이 백두대간이며 지리산 종주를 하다보면 보이는 것이라곤 앞사람의 발뒤꿈치뿐이지요. 하지만 입산의 마음으로 호흡을 가다듬고 겨울산이 던지는 메시지를 성찰하며 걷다보면 어느새 몸속에 거대한 산이 들어와 있게 됩니다.
눈 덮인 겨울산이 추우니 당연히 나도 춥고, 산이 목마르고 배고프니 나도 마르고 고픈 것이지요. 그래야 합니다. 그래야만 겨울 산행의 백미를 느낄 수 있지요.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해발 1000m 이상의 상고대며 설화를 온몸으로 마주하는 감격을 맛볼 수 있겠는지요.
너무나 차고 맑다 못해 희디희게 빛나는 상고대와 설화와 빙화는 꼿꼿한 정신의 표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말하자면 우리 마음속에 깊이 내장돼 있는 초심, 그러나 문득문득 놓치고 있던 첫 마음 같은 것이지요.
눈 쌓인 산길을 걷다가 문득 돌아보면 발자국 또한 나를 따라오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지금, 바로, 여기 이 자리에서 내가 나를 만나러 가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방증이지요. 산 아래의 내가 산꼭대기의 나를 만나러 가는 길. 그러니 나는 산 아래에도 있고, 산 위에도 있으며, 산을 오르는 숨 가쁜 길 위에도 있는 것이지요.
내가 나를 만나러 가는 겨울 산행은 여전히 춥고 배고프고 외롭고 숨이 가쁩니다.
저 눈 덮인 산정의 나를 만나러 오르는 길이나 다시 속세의 나를 만나러 하산하는 길이나 우리가 가야 할 산길은 모두 하나이지요. ‘외롭고 높고 쓸쓸한’, 그리하여 우리들 ‘정신의 흰 밥’인 저 무욕의 겨울산이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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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