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T_IMAGE]2,original,left[/SET_IMAGE]번역해야 할 것은 하지 않고, 번역하지 말아야 할 것은 한다. 그 결과로 새로운 문맹자만 는다. 우리 문자생활의 큰 문제다.
텔레비전 영화 한 편 골라볼까 하고 신문을 뒤적이니, ‘어페어 오브 넥클리스’라는 이름의 영화가 있었다. 기사 속에서 기자가 ‘목걸이 사건’이라고 번역해 알려주고는 있었다. 케이블 채널을 돌리다가 우연히 본 영화는 제목이 ‘헬’이었다. 지옥 같은 러시아 감옥의 실상을 고발한 작품이었다. 거리의 영화 광고를 보니 ‘클로저 댄 에버’라는 것이 있었다. 외국 영화 제명 번역은 귀찮아 포기하는가. 각자 실력껏 알아보든지 말든지 하라고?
외국어로 또는 로마자로 쓰면 멋있다고 생각하는 속물주의가 퍼져간다. 지난해 12월 한 백화점에서 보내온 할인판매 안내 소책자의 제목은 ‘Magical Stories of Christmas’라고 돼 있고 백화점 이름도 영어로 써 놓았다. 책자 안에는 Luxury Brands, Cosmetics, Home Deco & Food 등이 상품분류 명칭으로 돼 있다. 백화점들의 판매촉진 광고 책자가 매양 이런 모양새다. 어느 신축공사장 담벼락에는 Funstation Kid's Complex를 짓고 있다는 광고가 크게 씌어 있다. 놀이시설과 도서관, 박물관, 영어학원 등을 운영한다는데, 아이들에게 영어에 대한 선망부터 가르치려고 드는 것 같다. 우리말로 할 수 있는 것을 불필요하게 영어로 번역하지 마라.
공기업도 국민 영어교육에 나섰나 보다. 한국도로공사는 회사 이름을 ex라고 쓰기 시작했다. "ex는 Expressway를 뜻하며 Excellence(으뜸), Exciting(역동), Expert(전문)의 뜻도 포함한다"고 설명한다. 대한주택공사는 Humansia라는 말을 만들어내 “Human은 ‘인간, 인류'라는 뜻이고 sia는 ’넓은 공간, 대지’라는 뜻이며 인간이 중심이 되는 최고의 도시주거 공간조성을 통해… ”라고 길게 설명했지만 sia에는 그런 뜻이 있지도 않으니 어설픈 작명이다. 로마자 읽을 줄 모르면 회사 이름도 알기 어렵다.
얼치기로 외국어를 우리 언어생활에 끌어와 전혀 다른 뜻으로 씀으로써 본바닥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하고 한국어를 혼란시키는 예도 있다. 머잖아 국어사전의 풀이가 다음과 같이 되어야 할지 모르겠다. “파크: 주로 혼외정사 고객이 이용하는 단시간 숙박시설.” “랜드: 규모 큰 유료 놀이터.” “가든: 불고기나 갈비구이를 주로 파는 큰 음식점." “호프: 생맥줏집.”
번역하라. 국민 모두가 외국어에 능한 것은 아니다. 번역하지 마라. 우리말로 쓸 수 있는 것을 외국어로 바꿔 써서 우리말을 죽이지 마라. 우리 사회에는 중학교에 다니지 못한 성인 인구가 400만 명이라고 한다. 이들은 언어생활에서 핍박받고 있는 소수다. 소수의 권익도 배려되어야 성숙한 민주사회라고 할 수 있다.
모든 국민이 영어를 할 수 있게 된다 하더라도 우리말을 갈고 닦아 세계적 언어로 만들어가야 한다. 세계 정상들이 모이는 행사를 위해 부산에 지어진 건물 이름이 ‘누리마루’다. 순수한 우리말로 ‘누리’는 ‘세계’, ‘마루’가 ‘정상’이니 멋지고 딱 들어맞는 이름이다. World Summits Palace 따위로 하지 않은 것은 정말 다행이다. 누리마루 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