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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신입생이던 1980년대 중반 전북 김제로 농활을 갔습니다. 경상도 산골에서 자라나 전라도 땅을 밟는 게 처음이었습니다.
말부터 달랐습니다. 빠르고 비트가 강한 경상도 말이 꽹과리라면, 약간 느리고 리듬이 실린 전라도 말은 피리였습니다. 정(情)은 같았습니다. 학생들은 당연히 일을 하러 왔다는 입장이었지만 농민들은 “젊은 학생들이 도와주러 왔응게 고맙제이”라며 새참을 내놓습니다. 가끔 새참으로 빵과 같은 공산품이 나오면 학생들이 “감자(농산물)는 먹겠지만 농민이 돈주고 사는 빵은 먹을 수 없다”고 버티는 통에 농민과 학생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농활을 위해 버스를 타고 전북 지역으로 들어서는 순간, 다름은 말보다 ‘길’에서 먼저 나타났습니다. 당시 경상도에서는 국도는 물론 일부 지방도까지 아스팔트로 포장돼 있었는데 전북 지역은 국도마저도 맨땅이었습니다.
일제시대에 만들어진 듯한 신작로 위로 버스가 먼지를 풀풀 날리며 굴러가는 광경은 목가라기보다는 차라리 슬픔이었습니다. 그 슬픔은 87년 민주항쟁 이후 호남지역이 홀대에서 벗어나면서 잦아들었습니다. 이제 사회인프라 차원에서 호남과 비(非)호남 사이의 불균형은 거의 해소됐습니다.
그러나 영남과 호남을 포함한 비(非)수도권과 수도권 사이의 불균형은 더욱 커져가고 있습니다. 시골에서는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끊어지고 있습니다. 젊은이들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시골이 아닌 중소도시마저도 인구가 줄고 있습니다. 새로운 슬픔이 지방을 배회하고 있습니다.
뭔가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세종시 건설, 2단계 균형발전 계획 등은 대책의 일환일 것입니다.
이에 대해 일부 수도권 정치인과 자치단체장, 언론은 ‘좌파적 발상’이라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지방의 자치단체와 언론 일각에서는 ‘생색내기’라고 공격합니다.
양 극단 사이에서 균형이 필요합니다. 자전거도 균형이 잡혀야 굴러가니까요.
[RIGHT]박성휴 전문위원[/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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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