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T_IMAGE]2,original,right[/SET_IMAGE]어려서 울거나 떼를 쓰면 어른들에게 “순사가 잡아간다” “호랑이가 잡아먹으러 온다”는 말을 들었다. 과거 일제강점기 세대에겐 긴 칼을 차고 다니던 일본 순사는 호랑이만큼 무서운 존재였다. 일본 순사를 본 적도 없고 호랑이는 동물원에나 가야 구경할 수 있었던 광복 후 세대나 전후(戰後)의 베이비 붐 세대에게는 어른들의 위협이 실감나게 다가오지 않았다.
광복이 되면서 ‘일본 순사’는 ‘경찰관’으로 바뀌었다. 권위주의 정권이 경찰을 하수인으로 부리고 비호하면서 민초(民草)들에게 경찰관은 여전히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나는 1970년대에 대학을 다녔다. 당시 경찰관들은 서울 종로거리를 지나는 젊은 남녀를 붙잡아놓고 장발과 미니스커트를 단속했다. 반항하면 곤욕을 치렀다. 1980년대 5공 정권 치하에서는 민주화를 요구하는 대학생을 붙잡아 인정사정 볼 것 없이 두들겨 패는 ‘백골단’이 설쳤다. 폭력 경찰의 추억은 그 무렵 젊은 시절을 보낸 사람들의 머릿속에 선명하게 각인돼 있다.
민주화가 이뤄지고 국민의 권리의식이 높아지면서 경찰 폭력은 거의 사라졌다. 범법자가 아닌 한 경찰관을 두려워하는 사람도 없다. 관행이 완전히 사라졌다고는 볼 수 없지만 경찰관의 인권 의식도 높아졌다.
이제는 거꾸로 경찰관이 두들겨 맞는 세상이 됐다. 용산 사고 추모집회 일부 참가자들이 경찰관을 폭행하고 지갑을 강탈해 신용카드로 물건을 샀다. ‘추모 집회’라는 이름을 부끄럽게 하는 강도 행위다. 촛불집회 때도 경찰관의 옷을 벗기고 린치를 가하는 시위대가 있었다. 농민이나 노동자 단체들의 시위에서는 젊은 전경들을 향해 죽봉과 쇠파이프를 휘두르고 돌과 화염병을 던지는 일이 다반사로 벌어졌다. 쇠파이프나 화염병은 플래카드나 피켓 같은 시위도구가 아니고 살상무기다. 우리의 동생 같고 아들 같은 젊은 전경들이 심하게 다쳐 병상에 누워 있는 모습을 목도한다면 시위대가 그런 짓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경찰관을 폭행하고 전경에게 살상무기를 휘두르는 시위대를 찾아내 법적 책임을 지우면 잘못된 시위문화는 사라질 것이다.
국민의 생활현장에서 국법질서를 유지하는 경찰관이 존경받는 사회가 돼야 한다. 법치주의가 확립된 영국, 캐나다 같은 나라에서 경찰관은 선망의 직업이다. 경찰관이 되려면 어려운 선발 절차를 거친다. 경찰관은 국민의 존경을 받으며, 법집행도 엄격하고 공정하다.
우리 경찰관도 국민의 존경을 받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 경찰관이 제복을 입고 출퇴근하는 운동부터 벌였으면 좋겠다. 출퇴근 지하철에 제복을 입은 경찰이 한두 명이라도 있으면 성추행범이나 소매치기도 움찔해 감히 범행을 저지르지 못할 것이다.
[B]황호택 동아일보 수석논설위원[/B]
K-공감누리집의 콘텐츠 자료는 「공공누리 제4유형 : 출처표시 + 상업적 이용금지 + 변경금지」의 조건에 따라 자유롭게 이용이 가능합니다.
다만, 사진의 경우 제3자에게 저작권이 있으므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콘텐츠 이용 시에는 출처를 반드시 표기해야 하며, 위반 시 저작권법 제37조 및 제138조에 따라 처벌될 수 있습니다.
[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