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에너지 강국들은 공통점이 있다. 시민의 참여와 지지다. 시민은 에너지협동조합을 중심으로 에너지 생산자가 되어 재생에너지 확대에 이바지한다. 정부가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비율을 20%로 확대한다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것 역시 시민의 참여와 지지다. 독일에너지협동조합연합회 안드레아스 뷔그 사무처장을 만나 독일의 사례를 들어봤다. 또 걸음마 단계에 있는 우리나라 ‘태양과바람에너지협동조합’을 방문해 그 가능성을 엿봤다.
독일은 대표적 재생에너지 강국이다. 독일의 재생에너지 비율은 2016년 기준 28%에 이른다. 독일이 재생에너지 강국이 된 데에는 이를 지지하는 시민의 힘이 큰 영향을 미쳤다. 독일 재생에너지에이전시(Renewable Energies Agency)에 따르면 국민의 95%가 재생에너지 확대를 지지한다고 하니 재생에너지에 대한 독일인의 신뢰가 얼마나 대단한지 충분히 가늠하게 한다.
독일이 에너지전환을 본격화한 것은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다. 1950년대부터 원자력을 이용해온 독일은 구 소련 체르노빌 사고 이후 신규 원전 건설 중단을 결정했지만 원전을 둘러싼 논란은 계속됐다. 원전 정책의 가속이냐, 중단이냐를 놓고 줄다리기를 계속하던 독일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목격한 후 논란을 끝냈다. 노후 원전을 즉각 정지하고 2022년까지 모든 원전을 단계적으로 폐지하기로 했다.
독일이 찾은 대안은 재생에너지였다. 2050년까지 ‘에너지전환’을 추진하기로 결정하며 재생에너지법(EEG)을 제정했다. 특히 전력계통 운영자가 재생에너지원에서 생산된 전기를 의무적으로 구매하고, 생산한 전력을 고정가격으로 전력회사에 판매할 수 있는 발전차액지원제도(FIT)를 운용했다. 이 제도로 인해 협동조합 등 소규모 발전사업자는 안정적 수익 확보를 할 수 있게 됐다. 정부가 기반을 마련했다면 재생에너지 확대를 주도한 건 시민이었다. 특히 시민 결속의 중심에 에너지협동조합이 있었다.
에너지협동조합은 조합원이 공동으로 에너지원을 소유하고 에너지를 생산하는 개념이다. 주식회사의 모델을 차용하고 있으면서도 1인 1표를 사용하고 조합원 공동의 편익을 충족하기 위한 민주적 의사결정 구조를 갖고 있다. 또 조합의 에너지를 통해 발생한 수익금은 조합원에게 배당한다. 그동안 수동적인 에너지 소비자에 그쳤던 독일 시민은 에너지 생산자로 전환되면서 협동조합을 중심으로 조합원 수도 빠르게 증가해갔다.
▶ 독일 오덴발트 에너지협동조합이 설치한 주차장 태양광 패널(좌) 독일의 한 에너지협동조합이 축구장 관중석 지붕을 태양광 패널로 설치했다. 이로써 지역 주민은 재생에너지와 지역 시설에 동시 투자했다는 인식을 갖게 됐다(우). ⓒDGRV
독일, 개인 평균 490만 원 재생에너지에 투자
독일협동조합·농협연합회(DGRV)에 따르면 2006년 8개에 불과했던 에너지협동조합은 2011년 439개, 2016년 831개로 급성장했다. 조합원 수는 18만 명 가까이 된다. 독일의 에너지전환 정책은 시민 주도로 이뤄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합원은 최소 50유로(약 6만 7000원)부터 평균 3652유로(약 490만 원)를 출자하며 재생에너지 확대에 이바지하고 있다. 이에 대해 매년 3~4%에 이르는 배당금을 받는다.
협동조합의 기본 틀이 출자와 배당에 있지만 독일인이 에너지협동조합에 참여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DGRV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에너지협동조합 설립 동기에 대해 관계자들은 ‘재생에너지 확대’, ‘지역경제 가치 창출’, ‘조합원 배당’, ‘직접적 에너지 생산’ 순으로 응답했다. 눈에 띄는 건 ‘지역경제 가치 창출’ 항목이다. 에너지협동조합 참여가 지역경제를 살리고 그 이익이 결국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지역의 에너지 프로젝트에 외부 투자자나 대규모 개발회사가 참여할 경우 지역 이윤이 모두 외부로 유출돼 이익이 공유될 수 없음을 경계하는 것이다.
에너지협동조합이 주로 참여하는 형태는 태양광, 풍력, 지역난방 등이다. 이 과정에는 재생에너지의 설비와 유지, 서비스 등 다양한 분야가 투입된다. 바꿔 말하면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인력은 지역에서 동원돼 지역 일자리가 창출되는 셈이다. 아울러 자금 대출은 지역 은행에서 하고 지방 정부에 세금을 납부하니 지역경제가 순환을 그린다.
▶ 독일에너지협동조합연합회 안드레아스 뷔그 사무처장. 그는 “재생에너지가 확대되기 위해 이득을 제시하고 주민의 수용성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C영상미디어
독일에너지협동조합연합회 안드레아스 뷔그 사무처장은 재생에너지 확대에도 필요한 건 결국 ‘이득’이라고 말한다. 그것이 개인의 이득이든 공동의 이익이든 말이다. 구체적인 사례로 독일의 한 지역 에너지협동조합이 태양광 발전기를 설치했다. 태양광 패널이 설치된 곳은 축구장 관중석 지붕이었다. 시민들은 에너지협동조합에 투자했지만 동시에 축구장에 투자했다는 인식도 갖게 됐다.
또 자신이 출자한 금액이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 일상에서 확인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에너지협동조합에 불신하거나 반대하는 시선이 점차 줄었다. 시민의 관심도 증가했다. 스스로 에너지를 어떻게 소비하고 있는지 생활 속 에너지 사용 패턴을 돌아보고 실천 가능한 방안을 고민하는 계기가 됐다. 에너지전환의 동기를 부여해 다양한 방식으로 시민의 수용성이 증가하게 된 것이다. 독일재생에너지청 자료에 따르면 독일의 재생에너지 발전자산의 소유비중 중 시민·협동조합이 47%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시민들은 재생에너지를 위해 기꺼이 투자했다. 시민·협동조합의 뒤를 이어 은행·기업 등의 기관투자가 41%, 발전사업자가 12%의 수치를 보였다.
뷔그 사무처장은 이어 독일 서부 오덴발트 지역의 에너지협동조합 사례를 들려줬다. 2009년 설립된 이곳은 조합원 수가 3000명에 이른다. 오덴발트 조합은 5000만 유로(약 671억 원)를 투자해 83개의 태양광·풍력 발전소를 설치했다. 이곳은 공터, 주차장 등에 설치된 발전소를 통해 수익을 창출하고 지역 주민이 이용할 수 있는 유치원을 운영했다. 또 콘서트, 파티, 바비큐 대회 등을 열고 지역이 발전할 수 있도록 운용했다. 이 과정에서 지역 회사와 협력했고 지역경제에 활기를 불러일으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와 같은 사례들은 독일 곳곳에서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오히려 발전금액을 은행의 도움 없이 개인 투자금만으로 충당하는 사례도 많다. 에너지 생산에 지역 주민의 수용성이 증가하며 재생에너지 발전시설을 설치하는 데 생기는 지역 이기주의도 해소됐다. 이익이 직·간접적으로 편익을 증대시키고 지역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는 가능성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뷔그 사무처장은 “님비(NIMBY) 해소의 답은 협동조합에 있다”며 “재생에너지 확대에 저항하는 세력이 있다면 시민 참여로 극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물론 독일 에너지협동조합에도 문제점이 존재한다. 입찰 과정에서 대규모 업체 비율이 늘어나 협동조합이 설 자리가 줄어든 것이다. 독일 정부는 시민이 생산하는 에너지를 배려하는 특별법 제정 등의 방식으로 한계를 보완해가고 있다. 2050년까지 에너지전환을 이룬다는 독일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에너지협동조합의 역할은 계속 강조될 것으로 보인다. 시민의 참여가 독일 에너지전환의 강력한 동력이 되기 때문이다.
에너지협동조합은 독일 외의 국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미국은 에너지협동조합의 시발점이다. 1930년대 미국 농촌 가정의 90%가 전력 서비스를 제공받지 못했다. 이에 농촌 주민들이 전력협동조합을 설립하고 직접 전력을 공급받을 수 있게 한 것이 에너지협동조합의 첫걸음이었다. 현재는 900여 개로 늘어 대다수의 농장이 전력을 공급받을 수 있게 됐다. 전력협동조합은 재생에너지원을 포함해 다양한 에너지원에 투자하며 미국 발전 설비의 10% 이상을 보유하고 있다. 분야 역시 풍력, 태양광, 바이오매스 등으로 확대했다.
최근에는 개인이 직접 재생에너지 설비를 설치하기보다 협동조합이 운영하는 곳에 투자를 유도해 조합원들에게 배당한다. 이러한 방식을 통해 협동조합에 투자함으로써 조합원들에게 수익 환원, 요금 절감 혜택을 제공해 재생에너지를 확대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덴마크 시민 참여 풍력발전 연 수익 11%
영국의 협동조합 확산도 주목할 만하다. 영국은 재생에너지 시장을 확대하기 위한 방안으로 내륙 풍력발전을 추진했다. 이 과정에서 발생한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개념이 에너지협동조합이다. 주민들의 관심을 환기하고 교육을 강화하기 위해 시민이 참여할 수 있는 방안으로 도입된 것이다.
영국 정부는 2014년 ‘공동체 에너지 전략’을 발표해 에너지협동조합을 포함한 공동체 에너지 지원계획을 수립했다. 특히 2020년까지 태양광, 풍력, 수력발전 등을 통해 0.5~3GW(기가와트)의 발전을 목표로 에너지전환이 기업 아닌 개인·공동체를 중심으로 확대되는 것을 기대하고 있다. 영국의 재생에너지 시장은 아직 미미한 수준이지만 5000개 이상의 공동체 에너지가 활동 중으로 그 확대 가능성은 높을 것으로 예측된다. 다만 지역 주민의 수용성을 향상하는 것이 영국에너지협동조합 발전이 마주한 과제라 할 수 있다.
풍차의 나라로 잘 알려진 덴마크는 화석연료자원이 거의 없다. 덴마크는 1970년대 석유파동을 겪으면서 대체에너지 개발을 심각하게 고민하게 됐고 풍력발전 국가라는 정체성을 잡아갔다. 덴마크는 2020년까지 에너지 소비의 30%를 재생에너지로 공급할 계획이다. 99%의 에너지 자원을 수입했던 덴마크는 이제 재생에너지 정책을 바탕으로 에너지 자급률을 높이고 있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2009년 재생에너지 관련 법안을 마련한 덴마크는 소유권의 20% 이상을 지역민에게 제공하도록 의무화했다.
덴마크에는 세계 최대 규모의 풍력협동조합들이 있다. 특히 비도우레 협동조합은 그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비도우레 시에 풍력발전기가 설치되려 하자 소음을 우려하는 시민들의 심한 반발이 이어졌다. 비도우레 협동조합은 공청회를 개최하고 시민의 지지를 유도해 조합원으로 만들었다. 이 지역의 풍력단지에서 발생하는 수익은 연 11%에 달할 정도로 지역민에게 높은 경제적 효과를 제공했다.
우리나라의 에너지협동조합은 걸음마 단계에 있다. 2012년 제정된 협동조합기본법을 기점으로 다양한 협동조합이 설립됐다. 현재 1만 2000여 개의 협동조합이 조성된 가운데 에너지협동조합의 수는 전국 30~40개로 추산된다. 국내에서도 에너지 생산에 참여하는 시민이 증가하는 추세에 있다. 우리나라 에너지협동조합의 규모는 미미하나 중요성은 점차 커지고 있다. 정부가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를 20%까지 확대한다는 방침을 세운 만큼 그 기반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에너지협동조합의 역할도 커질 것이다.
▶ ‘태양과바람 4호 발전소’ 현판 (위) ⓒC영상미디어
태양과바람에너지협동조합조합원 가족들이 난지물재생센터 옥상에 설치된 3호 발전소 앞에서 진행한 기념 촬영
ⓒ태양과바람에너지협동조합
우리나라 최초의 에너지협동조합은 2013년 1월 설립된 서울시민햇빛발전협동조합이다. 이곳은 판매한 전력의 수익 일부를 지역사회에 환원하고 햇빛발전소를 계속해서 건설하며 재생에너지를 확대하고 있다. 이외에도 우리동네햇빛발전협동조합, 한살림햇빛발전협동조합 등이 재생에너지 발전소를 건립하고 전력을 판매하고 있다. 2012년 만들어진 태양과바람에너지협동조합(이하 태양과바람) 역시 마찬가지다. 태양과바람이 조직된 기점은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였다. 원전의 위험성을 감지한 일부 시민들이 모여 탈원전에 대해 공부하고 함께 고민했다. 하지만 막상 실천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았다. 시민들은 ‘반대만 할 게 아니라 사고를 긍정적으로 바꿔 에너지를 생산하자’며 수차례 논의 끝에 발전적 결론을 내렸다. 불안감이 시민의 인식을 깨운 셈이다.
그렇게 결성된 태양과바람은 단계적 계획에 착수했다. 1단계로 원전으로 만든 전기를 덜 쓰고 2단계로 공동 발전소를 확대하고 3단계로 개인 발전소를 통해 청정에너지 생산 비율을 늘려가는 방식을 취하기로 했다. ‘옥상마다 햇빛발전소, 집집마다 에너지절전소’를 기치로 총 4호기의 발전소를 보유하고 있는 태양과바람은 300여 명의 조합원을 보유하고 있다. 총출자액도 2억 원을 넘었다.
▶ 서울 은평구 서울혁신파크 미래청 위에 설치된 태양과바람 4호 발전소는 연간 11만 2675kWh의 전력을 생산한다. 이는 31가구(4인 기준)가 1년간 사용할 수 있는 전력량이다. ⓒC영상미디어
우리나라 전국 30여 개 걸음마 단계, 시민 참여 중요
태양과바람의 조합원이 되기 위해서는 최소 10만 원을 출자해야 한다. 십시일반 출자금이 모여 발전소를 짓고 나면 발전소에서 생산한 전력을 한국전력에 판매한다. 이렇게 수익이 나면 조합원에게 배당금이 돌아간다. 2014년부터 상업 운전을 개시한 발전소들은 지난해 첫 수익을 냈다. 약 3000만 원의 수익이 생겼고 조합원들에게 3%씩 배당이 돌아갔다. 10만 원을 출자했다면 3000원을 돌려받은 셈이다. 큰 금액은 아니지만 직접 에너지를 생산하고 받은 돈이라는 데 의의를 찾는다. 1000만 원을 출자한 고액 출자자부터 최소금액 10만 원도 부담스러워 1만 원씩 10개월 분할해 조합원이 되는 사례도 있다. 특히 학생의 경우는 후자다. 중요한 것은 뜻에 동참하는 조합원과 재생에너지 발전소 건설이 늘어간다는 점이다.
태양과바람은 지난 1월 4호 발전소를 준공했다. 발전소의 용량은 88.2kW로 연간 11만 2675kWh의 전력을 생산할 수 있다. 이는 4인 가족 31가구가 1년간 사용할 수 있는 전력량이다. 발전소는 서울 은평구 서울혁신파크 미래청 옥상에 위치했다. 서울시가 제공한 유휴 공간에 발전소를 설치해 도심 공간의 활용도를 높였다. 태양과바람은 현재 서울 서대문도서관 옥상에 5호 발전소 건설을 준비 중이다.
이외에도 태양과바람은 절전사업에 역점을 둔다. 가정에서 사용하는 전기량을 줄여 절약한다면 결국 그만큼의 에너지를 생산하지 않아도 되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에너지 절약 컨설팅을 하고 마을 에너지학교, 에너지 전환 캠페인 등 교육정책 사업을 함께 전개하고 있다. 조합원 사이의 교류 활동을 지속하고 함께 모여 발전소 청소, 교육 프로그램 등으로 참여를 지속하는 방안 역시 강구하고 있다. 조합원 외에도 일반 시민과의 에너지를 매개로 한 접점을 늘려가기 위해 ‘숍인숍’ 형태의 가게에서 에너지 절전 제품도 판매한다.
10월 20일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는 건설 재개와 동시에 신재생에너지 투자 확대를 정부에 권고했다. 남은 건 실천이다. 물론 우리나라의 에너지협동조합이 독일의 사례처럼 지역경제 활성화에 이바지하는 데는 시간이 걸릴 수 있다. 다만 태양과바람과 같은 시민 참여형 에너지협동조합을 통해 지역의 에너지 자립률을 높이는 노력은 필요하다.
이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시민의 참여 확대다. 국가 주도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시민의 참여만 있다면 기술, 제도, 재정 여건은 따라올 수 있다. 대다수의 재생에너지 선진국은 시민 참여와 그 외의 요건들의 시너지가 발현돼 이뤄졌다. 과거 재생에너지 보급의 한계가 기술과 제도의 미비에 있었다면 이제 시민의 수용성이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됐다. 혼자만의 참여가 힘들다면 협동조합 형태로 함께하면 된다. 시민 참여, 풀뿌리 에너지 민주주의를 향한 첫걸음이다.
선수현 | 위클리 공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