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나흘 조용히 머물다 오고 싶은 섬. 불편하지 않을 정도로 머물 곳과 먹거리가 가능한 섬. 오가는 데 많은 시간을 허비하지 않아도 되고 교통편도 괜찮은 섬. 널리 알려지지 않아 가족끼리 오붓하게 보내기 좋은 섬. 그러면서 소소한 이야기가 흐르는 섬. 까다로운 여행자, 집 떠나면 모든 게 불편하다는 걸 알면서도 기꺼이 고독을 즐기고픈 사람, 그런 사람을 위해 제격인 섬이 ‘고파도’다.
▶ 바다로 나가는 고파도 어민들
충남 서산시에 속한 고파도는 태안반도와 마주 보는 서산 해협의 끝자락에 있는 섬이다. 배를 타고 그 해협을 거슬러 가야 하는데 파도가 철썩철썩 뱃전을 때리기를 반복하다가 어느 지점에서는 계곡물처럼 급류로 변해 배를 흔들어쌓는다.
서산 팔봉에서 고파도로 가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바다가 가로림만이다. 가로림만의 길이는 25km, 너비 2~3km. 가로림만의 갯벌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규모이고 유일하게 자연 상태가 잘 보존된 곳이다. 그래서 해양수산부는 천혜의 갯벌을 보유한 이곳을 환경 가치 1위의 바다로 평가했고 해양보호구역으로도 지정했다. 천연기념물 점박이물범의 서식지이기도 하다.
그 가로림만에 숨은 섬, 고파도는 전형적인 우리네 옛 어촌 풍경과 양식장으로 이뤄져 있다. 배편은 구도 선착장에서 이용하는데 하루 세 차례 운항한다. 필자는 그날 배편을 놓쳐 소형어선 선외기를 타고 들어갔다가 나올 때는 정기여객선을 이용했다. 사선으로 15분, 정기 여객선으로 45분 소요된다. 바다가 소용돌이치는 뱃길을 헤쳐나가면 여행객들은 처음엔 다소 놀라지만 이내 섬 여행의 스릴과 해양 생태 여행의 색다른 맛이 무엇인지 실감하고 익숙해진다.
고파도는 가로림만에서 동그랗게 휘어져 들어온 곳에 위치해 호수처럼 잔잔하다. 60여 명의 주민이 사는 고파도는 충남 서산시 팔봉면 22개 마을 중 고파리에 해당하는 마을 단위 섬이다. 고려 때부터 ‘고파도(古波島)’라고 불렀다. ‘고파도성’이 문화재로 지정돼 있는데 ‘높을 고(高)’가 아닌 ‘옛 고(古)’여서 섬 이미지 또한 더욱 고풍스럽다.
고파도와 처음 만나던 날, 바다는 온통 해무로 나그네를 맞았다. 승무를 추는 여인처럼, 군무를 추는 학처럼 안개가 휘날리며 한 폭의 수묵화를 그려놓으며 나그네 넋을 빼앗았다. 이따금 바람 따라 안개가 밀려간 빈자리에 푸른 섬 한 귀퉁이가 보일 듯 말듯 비밀 커튼 여닫기를 반복했다. 자연이 연출하는 풍경 자체에 압도당했다. 크게 탄성을 내지를 뻔했지만 그러기엔 섬마을이 너무 적막했다.
그렇게 바닷길을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뎌 민박집 이장 댁에 도착했다. 여장을 풀고 이장님의 어머님께서 손수 삶아준 고동을 맛본 후 바다로 나갔다. 고파도는 해안선 길이가 4.5km, 백사장 길이가 500여m에 불과하다. 작아서 더욱 아름다운 섬마을의 호젓한 오솔길을 걷다 보면 어릴 적 고향 바닷가의 추억이 되살아난다. 콩, 옥수수, 고추, 오이 등 반농반어촌의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백사장으로 넘어가는 길에 산딸기, 삐비꽃, 해당화 군락지 등도 아련한 시골길 그대로였다. 꽃향기와 함께 시누대를 울타리로 삼고 있는 둑길을 넘어서자 툭 트인 바다가 열렸다. 우리뿐인 푸른 파도 앞에서 그 무슨 체면치레가 필요하랴. 일행은 너나 할 것 없이 함성을 내지르며 바다로 뛰어들어 파도타기를 했다. 고파도는 밀물 때는 모래 해변에서 해수욕하기가 좋고 썰물 때는 지천으로 깔린 고동과 모시조개, 바지락을 잡을 수 있다. 앞바다에서는 우럭, 노래미, 농어, 감성돔이 많이 잡힌다.
▶ 고파도 굴 양식장
이윽고 노을이 떨어졌다. 굴 양식장 바지랑대 위로 지는 짙은 노을이 한 편의 영화 같기도 하고, 조등(弔燈) 같아 슬퍼지기도 했다. 그런 허공을 갈매기들이 포물선을 그리며 구슬프게 울어댔다. 그렇게 태안반도 저편에서 노을이 뚝, 떨어졌다. 물론 지는 해는 다시 이 바다에 더욱 새롭게 떠오를 것이지만.
다음 날 아침 일찍 배를 타고 떠나기 위해 선착장으로 향했다. 고파도 바닷가에는 굴 껍데기로 가득했다. 굴 생산지로 유명한 섬의 흔적이다. 그 옛날에는 굴을 따서 목선을 타고 나가 다시 지게에 굴을 짊어지고 몇 개 산봉우리를 넘어 서산 오일장에서 돈을 샀었단다.
작은 여객선은 섬사람들과 오래도록 동고동락해왔는데 조수간만의 차이가 심한 탓에 물때에 따라 승선하는 사다리 각도와 높이가 달라진다. 객실에는 깨알만 한 글씨로 운임표가 붙어 있었다. 시멘트 1포대 200원, 조개자루 1포대 1000원, 멸치 1포대 500원, 비료 1포대 500원, 젓갈통 1개 1000원, 생선다라 1개 500원, 쌀 20㎏ 1포대 500원, 주민 1인당 2500원. 운임이 참 싸다. 분명한 것은 지불하는 요금이 많을수록 섬사람도 선장도 행복하다는 점이다.
그렇게 잔정이 출렁이는 섬 고파도. 해무처럼 사람과 바다가 더불어 그윽하게 교통하는 섬. 지나간 시간들이 몹시 그립거든, 무작정 고파도로 떠날 일이다. 문득문득 내 핏줄의 고향, 고향 사람들이 그립거든, 그 얼굴을 찾아 떠나듯 고파도로 길 떠나라. 그렇게 휴머니즘이 사무치도록 고프거든 고파도로 떠나라.
박상건 한국잡지학회장은 <샘이깊은물> 편집부장과 월간 <섬> 발행인을 지냈고 현재 사단법인 ‘섬문화연구소’ 소장이다. 섬과 등대 이야기를 수년간 써왔으며 단행본도 출간했다. 학자이자 여행가, 작가이기도 한 그는 지금도 틈날 때마다 섬으로 여행을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