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2위 크루즈 해운업체인 로열캐리비언인터내셔널은 3월 8일 중국 협력 여행사들에 한국으로 가는 여행 일정을 갱신한다는 협조공문을 띄웠다. 3월 15일부터 6월 30일까지 상하이와 톈진에서 출발하는 크루즈 일정 가운데 한국으로 가는 것을 모두 일본으로 돌린다는 일정표가 붙었다.
앞서 중국 국가여유국은 3월 2일 오후 20여 개 지방정부 여유국 책임자와 베이징에 본사를 둔 10여 개 대형 여행사를 소집해 15일부터 한국 관광 상품 판매를 중단할 것을 구두로 지시했다.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한반도 배치 가속화에 맞춰 거세지는 중국의 경제 보복에 외자기업까지 가세했음을 보여준다.
2016년 7월 사드 배치 결정 이후 중국의 경제 보복 첫 타깃은 한류와 한국 관광이었다. 8월부터 한한령(限韓令)이 흘러나오면서 저장 TV 예능프로그램에서 한국 가수 황치열의 출연 장면이 삭제되고, 한국 드라마에 대한 심의 중단으로 한중 동시 방영이 무산되는 사례가 잇따랐다. 10월엔 저가 단체관광 단속을 발표하면서 시안(西安) 등 일부 지역 여유국이 한국에 대한 단체관광을 20% 줄이라는 구두 지침을 내렸고, 12월엔 춘제(春節, 설)에 맞춰 제주항공 등 3개 항공사가 신청한 한국행 전세기 운항 노선 취항이 불허됐다.
중국 보복의 칼끝이 한류와 한국 관광을 먼저 겨눈 것은 한국에 주는 심적 영향이 큰 상징적인 분야이기 때문이다. 중국 측 피해가 상대적으로 적은 분야라는 점도 고려됐다. 중국은 사드 배치 단계가 진전될수록 보복의 강도를 높였다. 지난달 24일 요우쿠, 아이치이 등 중국의 인터넷 동영상 플랫폼에서 ‘런닝맨’ 등 한국 예능과 드라마의 2017년 방영분이 사라졌다. 중국 유명 로펌의 한국 담당자는 “한국 콘텐츠에 투자하는 협상이 사드 배치 이후 줄줄이 중단됐다”며 중국의 분위기를 전했다. 중국은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이나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모든 지침을 구두로 행한다. 그리고 우리 측이 사드 보복을 문제 삼으면 “민의(民意)에 따라 이뤄지고 있다”는 식으로 해명한다.
하지만 ‘반(反)한류’를 모두 사드 탓으로 돌리는 건 자국 산업의 고도화에 나선 중국 정책의 큰 흐름을 놓치는 우를 범하게 한다. 사드 배치 이전부터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사회주의 가치 중시는 한류 콘텐츠에 대한 규제 강화로 이어져왔다. 저가 관광은 중국 내에서도 폐해가 심각해 철퇴를 맞고 있다. 사드 배치는 이를 가속화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중국은 이제 한류 콘텐츠와 관광의 엘도라도에서 무덤으로 변한 것일까. 지난 2월 23일과 28일 베이징의 주중한국문화원에서는 ‘웹툰 쇼케이스’와 ‘코리아 콘텐츠의 날’ 행사가 열렸다. 각각 150여 명이 넘는 중국 측 관계자들이 찾아왔다. 사드 보복으로 억눌려 있을 뿐 한류 수요가 여전함을 보여줬다. 그렇다고 사드 배치가 철회되거나 사드 문제가 해소된다고 예전의 일상적인 한중관계로 자연스레 돌아가게 될까.
지금은 한중 교류의 끈을 놓지 않으면서 한류 콘텐츠와 관광의 질을 높이는 노력을 배가할 때다. 한한령 속에서도 영화 <부산행>과 드라마 <도깨비>가 중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끈 것은 규제의 벽도 콘텐츠의 질을 막을 수 없음을 보여준다. 맞보복을 한다고 중국 콘텐츠와 중국행 여행을 억제하는 건 그나마 남은 교류의 끈마저 끊기게 할 수 있다. 물론 사드 보복은 중장기적으로 한류산업과 관광산업의 특정 국가에 대한 과도한 의존도가 가져올 리스크도 부각시켰다. 사드 보복은 한류 콘텐츠와 관광산업에 위기만을 가져다준 게 아니다. 리스크에 강한 체질을 만드는 기회도 제공하고 있다. 사드 탓만 하며 푸념할 것인가, 체질 전환의 긴 여정에 오를 것인가. 선택은 우리 몫이다.
오광진 | 조선경제i 북경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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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