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가 재생에너지 발전에 집중하겠다는 에너지 정책을 발표했다. 상대적으로 원전 비율을 줄이겠다고 밝혀 관련 분야의 논의가 뜨겁다. 원자력 학계의 한 사람으로서 이분법적으로 정부 정책에 접근하는 사실이 안타깝게 느껴진다. 원자력의 장밋빛 청사진만 제시한 채 이익만 추구하는 태도는 지양해야 한다. 오히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양면을 살펴보고 국가와 미래를 위한 정책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원전의 가장 큰 문제점은 사용후핵연료 처리 문제다. 원전 사고는 차치하고라도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원전은 결코 대체에너지가 될 수 없다. 벌써 50여 년간 전 세계가 사용후핵연료 처리에 대해 연구해왔지만 뾰족한 대안을 찾지 못한 상황이다. 원전은 사용 후 방사능이 없어지는 데 10만 년이 걸린다. 현재는 이 기간을 단축시키기 위한 기술을 연구 중인데 수십 년간 별 진척이 없다는 게 문제다. 재처리도 쉽지 않다. 비용이 만만치 않을뿐더러 누구도 내가 사는 곳에 핵폐기물이 들어오는 것을 원치 않는다. 원자력은 사용후핵연료 처리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더 이상 배출되지 않게 조정해야 한다.
또 다른 논점은 발전단가다. 원자력은 저렴한 에너지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선행 원전국가들은 원자력이 값싼 에너지원이 아니라는 점을 인식하고 자의·타의로 탈원전에 나서고 있다.
원자력 비중 70%의 프랑스마저 원전 감축에 나서고 있다. 프랑스는 세계 원전 2위 보유국인 만큼 세계 원전 확대에 이바지했다. 그러던 프랑스가 원전을 포기한 속사정은 경제적 측면에 있다. 프랑스는 노후 원전 17기 정도를 수명 연장해야 하는 시점에 있다. 원전 건설비용이 5조 원이라고 할 때 프랑스의 노후 원전 수리비용은 약 2조 원이 든다. 안전기준을 강화할수록 수리비용은 증가한다. 노후 원전 수명 연장에 수십 조 원이 들어가는 상황에서 프랑스는 원전 축소와 재생에너지 개발을 선택한 것이다.
반면 우리나라 노후 원전의 수명 연장 비용은 프랑스의 10% 정도밖에 안 된다. 유럽 국가들이 안전성을 강화하고 유지·보수비용에 크게 투자하는 것과 상반된다. 안전성을 일부 외면한 처사라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원전이 저렴한 에너지원이라고 오해한 측면도 여기서 발생한 것이다. 더구나 앞서 거론한 사용후핵연료 비용까지 합쳐지면 원전은 다른 에너지원들보다 비싸진다.
일각에서는 원전 건설을 중단하면 기술 경쟁력을 잃고 수출시장도 좁아질 거라는 우려가 있다. 사실 우리나라의 원전 기술과 수출시장에는 착시효과가 존재한다. 원전 기술은 이미 평준화를 향해 가고 있다. 10년 만에 중국이 세계 원전시장을 주도할 수 있었던 이유다. 중국의 원전 종사 인력은 우리나라의 일곱 배에 이른다. 기술도 뒤지지 않는다.
시장도 마찬가지다. 현재 진행 중인 원전 건설도 중국이 3분의 1을 차지한다. 물론 중국의 원전 대비 재생에너지 투자는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원전을 추진하고 있는 일부 동남아 국가에서는 원전을 1기 또는 2기를 건설하는데 이럴 경우 원전을 보조해주는 전력이 부족해 가동이 어렵다. 혹자는 원전 수출 시장이 크다고 하지만 대부분이 중국, 러시아, 인도다. 이들 나라는 자국 기술로 원전을 짓는데 우리가 진출할 원전 시장이 어디인지 반문할 수밖에 없다. 원전 수출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또 건설 중단에 따라 전문 인력이 없어질 거란 시각도 있다. 실제 미국에서는 스리마일 원전사고 후 30년간 원전 건설을 중단했다가 재개 후 인력 부족을 겪었던 사례가 있다. 하지만 미국의 경우 건설비 상승과 맞물려 나타난 현상이다. 인력 보존을 위해 건설을 유지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상황이다. 오히려 인력의 재교육을 국가 차원에서 지원하는 대책이 보완되는 것이 맞다.
재생에너지 활용에서 눈에 띄는 사례가 있다. 중국 한 지역에서 1주일 동안 100% 재생에너지만 공급한 적이 있다. 우리나라의 한 개 ‘도’ 정도 크기의 인구는 800만 명가량 된다. 독일도 재생에너지를 4시간 동안 85% 공급한 적이 있다. 재생에너지의 공급 안정성을 담보해나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반면 우리나라의 재생에너지는 그 비율이 1~2% 내외로 극히 미약한 수준이다. 정부 주도로 재생에너지 사업에 적극 투자할 필요가 있다. 세계 여섯 번째의 원전대국이 된 데에도 정부의 아낌없는 투자가 있었다. 반면 재생에너지는 성장할 수 없는 구조였다. 투자 역시 부진했기 때문이다. 2000년 이후 유럽에서 재생에너지 발전소가 200개 설치된 것과 우리나라 상황은 심히 대조적이다.
에너지 정책이 정부 중심으로 이뤄진 이유도 있다. 전력수급 계획이 과도하게 설정된 경향이 있다. 당장의 건설 비용이 저렴하다고 원전을 이용해 전력 과잉생산을 해왔다. 가스로 개발해야 하는 피크 전력도 비싸다는 이유로 원전을 이용했다. 평상시 예비율이 30%가 넘었음에도 전력을 낭비해 생산했다. 선공개가 된 8차 수급 계획에 저성장 비율을 반영한 것도 적정생산을 위해서다.
이처럼 정부 주도의 수급 계획과 원전 건설이 맞물려 지금의 원전 발전이 가능했다. 이제 재생에너지 차례다. 연구 개발과 보급에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 연구개발비에 비해 보급 지원은 보완해야 할 점이 많다. 현재 신재생에너지공급의무화제도(RPS)는 500MW 이상의 시설을 보유한 대형사업자만 대상으로 하고 있다. 중소발전사업자에게로 확대한다면 지붕 위에 설치된 태양광 집열판을 어렵지 않게 찾아보며 재생에너지의 대중화를 앞당길 수 있을 것이다. 그 비용 조달은 원전 투자비용에서 찾으면 된다. 10기의 원전 건설에 소요되는 50조 원을 재생에너지 개발에 사용한다면 재생에너지 발전에 가속화가 붙지 않을까.
정부의 원전 지원, 재생에너지로 돌려보자
정부는 재생에너지 확대와 더불어 2030년까지 원전 10% 감소를 공언했다. 원전 10% 감소는 가정에서부터 실현할 수 있다. 가정에서 5%씩 절약하고 정부는 에너지 효율성을 5% 제고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문 열어놓은 채 에어컨을 켜고 영업하는 매장에 벌금을 부과하기보다 전기요금 자체를 조정해야 한다. 원전을 줄일 수 있는 힘은 국민의 협조에 있다.
▶ 2006년 대관령삼양목장에 설치된 풍력발전단지. 대관령 일대는 태백산맥을 중심으로 한 해발 900m 이상의 고산지대이자 바람이 많고 서남풍이 초속 6~7m로 일정하게 불어 풍력발전단지 최적의 장소로 주목받았다. ⓒ연합
그렇다면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은 가능한가.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우리의 목표가 지금 당장 재생에너지 100% 발전을 달성하자는 게 아니다. 수십 년의 과도기를 둘 것이다. 정부의 계획도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비율을 20%까지 끌어올리겠다는 데에 있다. 완전한 탈원전은 2070년대까지 지켜봐야 한다. 그동안 재생에너지를 늘려가고 원전을 감소하면 된다. 재생에너지 연구개발에도 투자를 확대해가면 된다. 그렇게 되면 재생에너지의 한계로 지적되고 있는 저장기술도 월등히 높은 수준이 되어 있을 것이다.
물론 그 길이 쉽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2030년까지 20% 달성을 위해서는 연간 1.5%의 성장이 필요하다. 1년에 4GW씩 생산을 늘려야 하는 셈이다. 특히 재생에너지의 주축인 수력발전 기반이 약한 우리나라의 입장에서는 태양광과 풍력의 비중을 확대할 수밖에 없다. 또는 다른 국가의 수력발전 비중만큼 일정 기간 원자력이나 천연가스(LNG)와 공존하는 시간을 거쳐야 한다.
우리가 지향하는 바는 에너지 정책의 전복이 아니다. 변화 과정을 통한 전환이다. 2030년까지 변화는 가능하다. 다른 국가들보다 시작은 늦은 감이 있지만 단계적으로 밟아가야 할 과정이다. 어쩌면 지금이 에너지 전환의 골든타임일지도 모른다.
박종운 | 동국대 원자력·에너지시스템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