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은 세계 골프 무대에서 ‘한국골프의 달’이었다. 1주일 간격으로 세계 최고의 골프 무대에서 한국의 남녀 골퍼가 잇따라 우승했다. 특히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렵다는 미국 프로골프(PGA) 투어에서 한국 국적 선수로는 처음으로 20대 우승자가 나왔다.
그 주인공은 PGA 투어 진출 17개월 만에 우승한 배상문(27·캘러웨이)이다. 또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에서는 이일희(25·볼빅)가 국산 골프공으로 세계 무대를 제패하는 첫 번째 주인공이 됐다.
두 선수의 우승 스토리는 그 지향점이 다르다. 하지만 가슴 뭉클하기는 마찬가지다. 배상문은 홀어머니에 대한 지극한 효심과 성공에 대한 열망이 간절했고, 이일희는 궁핍한 생활 속에서도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배상문 PGA 투어 첫 승은 간절한 ‘엄마의 선물’
“어머니는 혼자서 나를 키웠다. 나는 어머니가 흘린 눈물의 양을 알고 있다. 그 어머니에게 ‘성공’이라는 두 글자를 항상 선물하고 싶었다.”
배상문의 얘기다. 국내 골프계에서 배상문 또래의 아들을 둔 부모는 시옥희(57)씨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 배상문의 어머니 시씨는 아들의 성공을 위해 헌신한 ‘우리 시대의 어머니’다. 외아들을 여자 혼자의 몸으로 뒷바라지하느라 집과 자동차, 심지어는 결혼 패물까지 돈이 되는 것은 모두 내다 팔았다.
배상문이 국내서 활동할 당시 아들의 캐디를 자처해 20킬로그램 가까운 골프백을 메고 전국 골프장을 돌아다녔다. 2009년 레이크사이드 골프장에서 열린 신한동해오픈에서는 아들의 티샷이 워터해저드에 들어간 지점과 동반자가 지적한 공의 입수 지점이 다르다고 항의했다가 대회장에서 쫓겨난 일도 있다. 이후 시씨는 1년간 ‘대회장 입장 불가’ 처분을 받아 아들의 경기를 직접 관람하지 못했다.
배상문이 우승컵을 들어올리던 그 시각 어머니 시씨는 경남 합천 해인사에 있었다. 독실한 불교 신자인 그는 석가탄신일 하루 전날인 16일부터 해인사 홍제암에서 밤새 불공을 드렸다. 시씨는 “그저 고마울 따름”이라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아들이 이제 PGA 투어에서 우승도 했으니 더 이상 간섭하지 않겠다”며 웃었다.
배상문은 5월 20일(한국 시간) PGA 투어 ‘HP넬슨바이런챔피언십’에서 합계 13언더파로 동갑내기 키건 브래들리(27·미국)를 2타 차로 꺾고 어머니께 생애 첫 우승 트로피를 안겨드렸다. 그는 이번 우승으로 120만6천 달러(약 13억6,500만원)의 금맥을 캤다. 또 2014년부터 2015년까지 2부 투어나 월요 예선 걱정 없이 대회에 나갈 수 있는 2년간의 투어카드를 획득했다.
이 대회가 시작된 첫날인 5월 7일 어버이날을 하루 앞두고 미국에서 어머니에게 “엄마 사랑해. 내 꼭 성공해서 돌아가꼬마”라고 적힌 카네이션을 보냈다. 어머니 시씨는 그런 아들에게 “퍼팅 하나하나에 목숨을 걸어라”고 답했다고 한다. 배상문의 우승은 ‘어머니에게 간절하게 선물하고 싶었던 성공에 대한 열망’에서 싹텄다.
이일희 “궁핍했지만 돈이 아닌 꿈을 생각했다”
“대회 조직위원회가 제공하는 무료 숙소를 이용하고 차를 얻어타고 다녔다. 대회가 없을 때는 지인의 집에 얹혀 지냈다. 그래도 투어 경비는 늘 모자랐고, 통장 잔고가 바닥이 난 적도 있었다.”
꿈은 그를 궁핍한 선수로 만들었다. 대회에 참가할 땐 제일 싼 이코노미클래스 티켓을 구입해 혼자 비행기를 탔다. 호텔 대신 ‘하우징’을 하면서 직접 음식을 해 먹었다. 하우징은 대회장 근처빈방이 있는 가정집을 빌려 선수들에게 무료로 제공하는 숙소다. 한때는 미국 골프 무대를 포기하고 한국에 돌아올 생각을 했다. LPGA 투어 데뷔 4년 만에 첫 우승을 달성한 이일희의 이야기다.
이일희는 지난달 27일(한국 시간) 바하마 파라다이스 아일랜드의 오션클럽 골프장에서 열린 LPGA 투어 ‘퓨어실크-바하마 클래식’에서 합계 11언더파로 우승했다. 최종 라운드에서 7타를 줄이며 맹추격한 아이린 조(29·미국)를 2타 차로 꺾었다. 우승상금으로 19만5천달러(약 2억1,600만원)를 벌었다.
그는 2011년 한 기업과 후원 계약을 맺었다가 한 푼도 받지 못하는 사기를 당했지만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역경 속에서도 묵묵하게 한 우물을 팠다. 그의 도전은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꿈 때문이다.
친구 신지애(25·미래에셋)가 그의 도전을 더욱 부추겼다. 국가대표 상비군 시절 같은 방을 쓰며 함께 훈련한 친구 신지애는 이미 국내 무대를 평정하고, 2009년 미국 LPGA 투어로 입성한 뒤 맹활약했다.
1988년생 ‘세리키즈’ 중 한 명인 이일희는 그렇게 안정된 국내투어 무대를 박차고 2010년 ‘나홀로’ 미국 LPGA 투어에 뛰어들었다. 가족도 매니지먼트사도 없었다. 자신이 원했던 무대로 진출했지만 데뷔 첫해인 2010년 상금 6만7천 달러(약 7,500만원)를 벌었다. 이 정도로는 연간 1억원이 넘게 들어가는 투어 경비도 충당하기 어려웠다. 그 이듬해인 2011년(시즌 상금 약 5,900만원)에는 수입이 더 줄었다. 국가대표 상비군 등 화려한 주니어 시절을 보내고 2007년 KLPGA 투어에 데뷔해 매년 상금 랭킹 20위권을 넘나들었던 그로서는 비참한 생활이었다.
하지만 항상 ‘꿈(LPGA 투어 우승)’을 생각했다. 그는 “선수로서 어느 순간 최악의 밑바닥까지 떨어졌지만 단 1승이라도 하자며 오기로 버텼다”고 눈물을 글썽였다.
글·최창호(일간스포츠 골프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