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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T_IMAGE]2,original,left[/SET_IMAGE]50여 년 전, 강원도 화천군 상서면에 토고미(土雇米) 마을이라는 곳이 있었다. 땅(土)이 비옥해 쌀이 많이 나서 농사일을 거들면 품삯(雇)을 쌀(米)로 줬기 때문에 이름붙여진 마을이라고 한다. 1956년 행정구역 개편과 함께 ‘신대리’로 이름이 바뀐 이 마을은, 그러나 1999년 다시 옛 이름 ‘토고미’를 마을 입구에 크게 내걸었다. 그리고는 도시사람들이 오리 15마리를 보내 농사일을 거들면, 그 해 가을 토고미 주민들은 오리농법으로 지은 무농약 햅쌀 8kg을 ‘품삯’으로 보내준다.
지난 4일 오전 8시, 강원도 화천군 상서면 신풍초등학교 교무실. 폐교된 뒤로 외지 손님들을 맞는 ‘자연학교’로 바뀐 이곳에서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 주민 30여 명이 강의에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다.
“여러분들도 우리 마을 이름의 유래에 대해 들으셨겠지만, 예전 같으면 이 마을 식구 세 명이 품을 팔면 하루에 쌀 한 말은 벌 수 있었습니다. 힘만 있으면 먹고 살 수 있던 시절이었죠. 하지만 이제 세상이 달라졌습니다. 땅이 많아도 소용없지요. 땅 많으면 오히려 일 많이 한다고 시집 안 오는 세상 아닙니까. 이제 세상은 지식정보화사회로 가고 있습니다. 우리 농민도 차근차근 따라가야 합니다. 농촌마을도 이제 하나의 경영체가 되어야 하는 겁니다.”
강단에서 열변을 토하는 이는 토고미 마을의 이장 한상열 씨. 그의 말이 이어질 때마다 외지인 수강생들은 연방 고개를 주억거린다.
강의를 듣고 난 양평군 주민 남용미 씨는 “정말 가슴에 와 닿는 이야기였다”며 “우리 마을도 토고미 마을 정도의 조건은 되는데 부녀회가 발벗고 나서서 변화를 시도해 봐야겠다”고 다짐하듯 말했다.
한 이장은 지난 1999년부터 이 마을에 친환경농업의 씨앗을 뿌린 뒤 마을 전체에 새로운 꿈을 영글게 한 주인공이다. 그의 새로운 실험의 시작에는 사연이 있었다. 뜻밖의 위암 선고를 받고 난 뒤 그는 식이요법으로 위암을 치료하기 위해 고향마을에 정착한 것이다. 마을 주민 4명이 함께한 2000년 첫해의 벼 수확량은 대략 150가마. 하지만 ‘친환경’의 원칙을 고수한 덕택에 소득은 점차 불어났고 동참자도 늘었다. 현재 토고미 마을에서는 모두 29가구가 한 이장과 함께 친환경농법으로 농사를 짓고 있다.
주민들이 대거 합세하면서 수확량이 늘어나자 한 이장은 새로운 고민이 생겼다. “우리 농촌의 진짜 문제는 생산량보다 안정적인 판매망 확보”임을 깨닫게 된 것. 토고미 마을이 공동체 방식으로 오리농법을 통한 도시 소비자와의 직거래에 눈을 돌린 것도 이러한 깨달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SET_IMAGE]3,original,center[/SET_IMAGE][B]도시에서 ‘오리’ 보내 무농약 쌀 재배[/B]
지난 2001년, 한 이장은 ‘마을 공동체 생산’과 ‘오리농법’이라는 두 가지 원칙을 세웠다. 우선 마을의 논농사는 공동체의 작목반이 짓는 계약제 농사로 바꾸었다. 논 주인과 체결한 ‘오리농법 벼 재배 계약서’에는 작목반원들이 농약을 사용하지 않고 오리농법을 성실히 이행하겠다는 단서 조항이 붙어 있다.
쌀 판매망은 ‘오리축제’와 ‘자연체험’을 도입해 구축해 나갔다. 특히 매년 6월6일 열리는 오리축제는 도시 사람들이 토고미 마을로 찾아와 논에 오리를 직접 풀어주면서 자연을 체험하게 하는 행사로 정착됐다. 행사 참가자들이 오리 15마리를 마을에 제공하면 ‘토고미 가족’으로 등록되고, 풀어놓은 오리는 논에서 해충을 잡아먹으며 무농약 농사를 거든다. 마을 주민들은 이렇게 길러낸 햅쌀을 수확철이 되면 도시의 토고미 가족들에게 8kg들이 한 가마니씩 품삯으로 우송한다.
토고미 쌀은 8kg들이 한 가마니에 일반 쌀의 시중가격 1만6,000원보다 2배 이상 비싼 3만4,000원에 팔리고 있다. 이렇게 해서 올린 수익금은 논 주인과 공동체의 작목반원이 함께 나눈다. 쌀의 도정·포장·택배까지 공동체가 나눠 맡는다.
한편 오리 축제에 참가하지는 않지만 직접 주문 방식으로 토고미 쌀을 구입하는 ‘가족’도 전국적으로 1,100여 가구에 이른다고 한다. 또 연중 자연체험학교를 별도로 운영하면서 토고미 마을을 관광상품화하고 홍보하는 방식도 도입했다.
[B]성공 비결은 마을 공동생산과 홍보 마인드[/B]
하지만 토고미 마을이 고수익을 자랑하며 유명세를 타게 된 진짜 이유는 다른 데 있다. 토고미 마을의 새로운 실험을 지원하고 있는 화천군 농업기술센터 최수명 계장은 성공 원인을 마을 공동 생산과 철저한 홍보 마인드에서 찾았다. 최 계장은 “토고미 마을의 가장 큰 경쟁력은 시설물이 아니라 마을 공동체 조직과 운영 시스템”이라며 “벼농사뿐 아니라 자연체험을 하는 손님들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식당 운영까지 마을 전체가 하나의 완결된 생산 구조로 공동체 작업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토고미 마을은 자연학교를 공동 임대하고 농기계 보관 창고·간이 집하장·정미소·마을 펜션도 공동 시설물로 사용하고 있다. 이들 마을 자산을 전문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주민 가운데서 ‘전업’ 사무국장을 선발해 월급제로 운영한다.
토고미 마을의 적극적인 홍보는 이 마을의 새로운 개척자인 한상열 이장의 근성에서부터 나온다. 한 이장은 토고미 마을을 벤치마킹하기 위해 찾아오는 타 지역민들에게 자신의 ‘홍보 비법’을 이렇게 설명한다.
“입소문이 가장 큰 홍보 전략입니다. 작은 것을 소중하게 생각하세요. 마을에 농활 오는 대학생들에게도 친절함을 몸으로 보여주십시오. 다음에 부모님과 함께 우리 마을을 다시 찾은 학생도 있습니다. 흔히 공중파 방송을 타야 홍보가 된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프로그램 만드는 방송 작가들은 항상 소재를 찾기 위해 이 잡지, 저 잡지 다 찾아보거든요.”
마을 작목반 총무를 맡고 있는 김춘호 씨는 “이장님 얘기를 듣고 있다 보면 한 회사 경영자를 보는 것 같다”며 “우리도 자연스럽게 이장님의 생각을 따라 배우게 됐다”고 말했다.
[B]공동 생산제 시행착오도 모두 극복[/B]
물론 공동 생산 방식에 익숙하지 않은 주민이 지금처럼 함께 일을 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마을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이보욱 씨는 이렇게 말한다.
“자연체험단 40여 명이 한 끼 식사에 5,000원을 내고 다녀간 적이 있었어요. 나중에 수지를 맞춰 보니 적자예요. 알고 보니 부녀회원 25명이 식사 준비를 하는데, 그 가족들까지 다 나와 식사를 해 손님보다 주인이 더 많았더군요.”
또 처음에는 식당 운영 수익을 부녀회 기금으로 적립하기도 했는데, 식당 봉사를 맡은 부녀회원들이 장화를 신은 채 식당을 밟고 다니거나, 손님이 늦게 오면 짜증을 부리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팀제를 도입해 조별로 돌아가며 식당 근무를 하게 하고 수익금을 전부 개인의 몫으로 돌리면서 이러한 문제가 해결됐다.
토고미 마을은 완벽한 마을 공동체 운영을 위해 한때 대학을 졸업한 사무국장을 채용하기도 했다. 주먹구구식 재정 운영을 탈피하자는 의도에서였다. 하지만 대졸 사무국장은 자연체험을 나온 어린이들에게 지게에 대해 “옛날에 물건을 옮기는 데 쓰던 도구”라고밖에 설명하지 못했다. 반면 마을 토박이 출신인 이보욱 현 사무국장이 “제가 처음 지게를 진 것이 초등학교 4학년 때였으니 여러분 만할 때였어요”라고 설명을 시작하면 도시 아이들은 눈망울을 초롱초롱 반짝이며 설명에 빠져든다.
이런 시행착오를 거쳐 토고미 마을은 이제 전국의 어느 농가 부럽지 않은 수익을 자랑하게 됐다. 2000년 수익 9억 원에 방문객 80여 명이던 것이 2003년에는 13억 원, 9,700여 명으로 각각 늘어났다. 토고미 마을의 지난해 호당 평균소득은 3,500만 원으로, 전국 농가 평균소득 2,654만 원과 강원도지역 농가소득 2,835만 원을 훌쩍 뛰어 넘었다.
[B]전국 평균 훌쩍 넘어선 농가소득 [/B]
토고미 마을이 이 같은 성장을 거듭한 데는 지자체와 중앙정부의 지원도 한몫했다. 토고미 마을에는 강원도의 새 농어촌 건설운동 사업비 5억원, 농림부의 녹색농촌 체험마을 사업비 2억 원이 지급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이 마을은 지난 2002년 농촌정보화 마을로도 선정돼 행정자치부로부터 4억 원을 지원받았다. 이 돈으로 마을 주민들은 자연학교에 컴퓨터실을 마련했고, 컴퓨터 설치를 원하는 농가 42가구에 무상으로 컴퓨터를 보급했다. 주민들은 이 같은 정보화 기반 시설을 활용해 토고미 쌀을 직접 전자상거래할 정도로 익숙해졌다. 또 올해는 2006년까지 강원지역 3개 마을에 70억 원을 지원하는 종합개발사업 대상으로도 선정됐다.
또 ‘1사1촌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삼성전기와 자매결연을 맺어 매달 1회씩 삼성전기 직원들에게 유기농 식단을 제공하고 연간 5,000만 원의 수익을 올리고 있다. 한림대 구내식당과도 2,000만 원 규모의 농산물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토고미 마을은 이 같은 성공을 바탕으로 지난 11월11일부터 14일까지 부산에서 열린 지역혁신박람회에서 지역혁신 우수 사례로 국무총리상을 수상했다. 이 마을의 성공으로 인근 구운리와 장촌리에도 각각 산천어밸리와 전통식품마을을 특화하는 사업이 한창 진행중이다.
[B]가장 큰 경쟁력은 ‘무공해’ 도농(都農) 교류 [/B]
이렇게 액수로 따질 수 있는 소득뿐 아니라 무공해 농산물을 주고받으며 도시 주민과 나누는 살가운 정(情)도 이 마을 주민들을 살맛나게 한다. 한 이장의 설명이다. [SET_IMAGE]4,original,right[/SET_IMAGE]
“매달 한 번씩 우리 가족들에게 영농일기를 보냅니다. 이번달에는 벼에 비료를 얼마나 줬는지, 무슨 작업을 했는지 뿐만 아니라 마을의 경조사까지 꼼꼼히 담겨 있지요. 한 달에 한 번씩 1,000통이 넘는 영농일기를 보내려면 작목반원 9명이 둘러앉아 몇 시간씩 작업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게 우리 가족들에 대한 정성이라고 생각하면 빼놓을 수 없는 일이지요.”
한 이장은 취재중에 기자의 입에서 튀어나온 ‘도시 소비자’라는 표현을 “우리는 소비자라고 하지 않고 가족이라고 부른다”며 몇 번씩 바로잡아 주기도 했다.
토고미 마을 홈페이지(http://togomi.invil.org) 게시판에 올라온 글들을 읽다 보면 무공해 농산물뿐 아니라 ‘무공해’ 도농 교류를 통해 나누는 인심이 이 마을의 가장 큰 경쟁력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난 6월 초 자연체험 행사에 참여했던 한 주부의 글이 이를 잘 보여준다.
“지난 6월 5일 행사에 참여했던 토고미 가족입니다. 행사 내내 가족같은 분위기가 정말 좋았습니다. 무엇보다 여섯 살 난 아들이 좋아해 정말 행복한 하루였습니다. 제기차기에서 2등 해서 상품도 타고, 특히 물고기 잡기는 정말 흥분 그 자체였다고 할까요? 주신 미나리도 너무 맛있게 먹었고요. 고생하신 마을 분들께 정말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참 그리고 그 맛좋은 감자는 언제쯤 구입할 수 있는 건가요? ”
[U]<<인터뷰>> 정갑철 화천군수[/U]
[SET_IMAGE]5,original,left[/SET_IMAGE]-토고미 마을이 화천군 전체에는 어떤 영향을 미쳤습니까?
“토고미 마을로 인한 군 전체 홍보효과가 매우 큽니다. 토고미 마을이라는 이름으로 화천군이 알려질 정도니까요. 인근 지역에 대한 관광 파급 효과도 크고, 무엇보다 인근 마을에 큰 자극을 주고 있습니다.
화천군에서는 구운리와 장촌리 외에도 토마토··가시오가피 등을 특화한 후발 4개 마을이 열심히 토고미 마을을 뒤쫓아 가고 있습니다.”
-화천이 자랑하는 경쟁력은 무엇입니까?
“무엇보다 때묻지 않은 청정함입니다. 그 깨끗함을 그대로 상품화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죠. 예를 들어 파로호에서 평화의 댐을 오가는 페리호를 운행하려고 해도 기름 대신 전기를 사용하는 배를 들여오는 세심함이 필요합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농사꾼이 돈을 알게 되면 더 이상 농사꾼이 아닙니다. 관광산업을 특화하려는 지자체라면 공통적으로 이런 고민을 할 것입니다. 토고미 마을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도 도시 주민들을 단순한 소비자로 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화천군의 주요 군정 목표는 관광산업 활성화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관광산업 개발을 위해 따로 진행중인 사업이 있습니까?
“백암산 생태공원·파로호 테마밸리·수달연구센터 조성 등이 주요 사업입니다. 화천군 전체 산업의 65%를 관광산업으로 전환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앞으로 2~3년만 지나면 화천군 전체의 모습이 확 달라질 만큼 관광 인프라가 구축될 것으로 보입니다. 화천군 여성들을 최고의 관광 서비스우먼으로 양성하기 위한 교육사업도 함께 진행중입니다. 인터내셔널 관광 가이드라는 자부심을 심어주는 것이 교육의 핵심입니다.”
-현재 정부 차원에서 국가균형발전 사업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이 사업이 화천군 농촌지역에는 어떠한 영향을 미쳤습니까?
“지난해 겨울 군에서 산천어 축제를 열었을 때입니다. 모두 관광객이 얼마나 올까 노심초사하며 행사를 준비했죠. 그런데 예상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몰렸어요. 그 중 한 마을은 동네 전체가 가래떡을 팔아 행사 기간에 1,600만 원을 벌었답니다. 그 마을 사람들이 이익금 중에서 불우이웃돕기에 써달라며 100만 원을 가져왔는데, 돈을 받으면서 정말 눈물이 날 것 같았습니다. 국가 차원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주민들 스스로 변화한다면 농촌의 발전이 먼 얘기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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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