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배면적 약 150만ha, 생산액 500억 유로에 이르는 세계 화훼시장은 정체 상태다. 가격경쟁력을 앞세워 전통 화훼강국을 위협하는 신흥 국가들이 조금씩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 그럼에도 오랜 기간 안정적으로 시장을 끌고 나가는 화훼 선진국에는 유사한 패턴이 있다. 꽃을 사랑하는 국민정서가 자국 시장을 다지고, 여기에 기술개발 투자를 아끼지 않으면서 해외시장 개척에 적극적이라는 것. 우리나라 화훼산업도 이와 같은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네덜란드
100년 전통 화훼강국 생산·소비 모두 독보적
▶ 네덜란드 리세의 쾨켄호프에서 열린 튤립꽃 축제 ⓒ연합
네덜란드는 화훼 생산과 소비 모두 독보적인 화훼산업 선진국이다. 네덜란드의 화훼 생산액은 53억 유로에 달한다. 우리나라 면적의 2분의 1에 불과한 네덜란드는 영국, 독일, 프랑스 등 사이에 있어 유럽시장 화훼류의 왕래가 왕성한 곳이다.
세계 화훼시장에서 절화(折花), 분화(盆花) 등 관상식물의 네덜란드 수출물량이 세계 약 50%를 차지한다. 네덜란드 화훼 면적은 약 2만 6000ha로 꾸준한 시설 규모화와 생산성 향상 시도가 생산액 증가를 이루고 그것이 수출로 이어지고 있다. 네덜란드의 2015년 화훼 수출액은 81억 유로로 세계 1위의 수출국가로서 기염을 보였다.
네덜란드 화훼산업 경쟁력의 원천은 튼튼한 유통체인과 정부의 투자, 지속적인 연구개발과 발 빠른 신기술 적용 등이다. 네덜란드 정부는 급변하는 환경에서 자국 산업 보호나 소득을 지원하는 정책 대신 연구개발 분야에 과감하게 투자하고, 산하 연구기관과의 긴밀한 연계를 통해 농업 지식정보체계를 구축하는 등 장기적 관점에서 화훼산업에 투자해왔다. 네덜란드만의 클러스터 ‘그린포트’와 ‘시드벨리’도 주요 성공 요인이다.
네덜란드 화훼산업은 오랜 기간 산업경쟁력을 축적해왔으며 다른 국가에 비해 효율적인 유통시스템, 인프라 구조를 갖추고 있어 다른 국가가 위협할 수 없는 수준을 구축했다. 생산 노하우, 수확 전반의 로지스틱 시스템을 구축해 세계시장에서 단연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네덜란드 화훼산업이 성공할 수 있었던 여러 요인 중 가장 결정적인 것은 역시 꽃을 사랑하는 국민들의 정서다. 네덜란드 골목길에서 꽃을 사고파는 사람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수백 년에 걸쳐 문화로 자리 잡은 네덜란드인의 꽃 사랑은 화훼강국으로서 무엇보다 강력한 무기다.
일본
꽃 교육 강화로 새로운 수요 창출
▶ 일본 사이타마 현 농장에서 난초를 재배하는 모습 ⓒ연합
일본의 2013년 화훼 면적은 31만 4000ha이다(화목류 포함). 일본은 1인당 꽃 소비 비용이 10만 원을 넘는다. 내부 수요가 많음에도 일본의 화훼 수요는 1997년 정점을 이룬 후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추세에 있다. 특히 국화, 장미, 카네이션 등의 품목은 일본 국내 생산에 적지 않은 위협이 되고 있다. 이는 수입 절화 비중의 확대로 가격경쟁력에서 밀리기 때문이다.
일본은 분화에 비해 절화의 소비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 절화의 유통 비중은 일반 소매점을 통한 판매 비중이 가장 높고 그 수준이 안정적이다. 내수 감소와 해외 품종 유입으로 일본의 화훼산업은 하락 추세에 있지만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 이는 화훼산업 지원에 대한 일본 정부의 노력이 반영된 결과다.
일본 정부는 화훼산업의 위기를 감지하고 2009년 ‘화훼산업진흥방침’을 발표했다. 일본 정부의 화훼산업 육성 정책 중 주목을 끄는 내용은 새로운 수요 창출을 위해 화육(化育)을 추진한다는 것이다. 식습관, 식문화 등을 교육과 연계해 유치원과 초등학교의 교육에서 꽃 교육을 강화하고 가정 및 지역사회, 화훼산업 관계자들이 재배 등 꽃과 관련된 활동을 통해 긍정적 측면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일본의 도매시장은 웹 거래 방식을 이용한다. 경매 이전에 3분의 2가량의 거래가 이뤄지기 때문에 출하량에 따라 가격이 급등락하는 현상이 완화될 뿐 아니라 화훼 수급도 비교적 안정적으로 이뤄진다.
웹 거래가 가능한 요인은 화훼의 품질 표준화가 잘 발달돼 있고 출하자와 도매유통기구 간 신뢰가 구축돼 있기 때문이다. 또 도매시장에 반입 즉시 화훼를 정온고에 보관해 이동을 최소화함으로써 품질을 높이고 있다.
미국
세 집 중 한 집은 정기적인 꽃 구매
▶ 미국 매사추세츠 주 보스턴에서 열린 꽃 축제 ⓒ연합
미국 화훼 생산은 주로 캘리포니아와 플로리다에서 이뤄진다. 캘리포니아의 2015년 생산액은 10억 8000만 달러, 플로리다의 생산액은 10억 3000만 달러를 기록했다. 이 두 주는 미국 전체 화훼 생산의 약 49%를 차지한다.
미국의 화훼산업이 유지될 수 있는 요인은 내수에 있다. 미국은 세 집 중 한 집이 정기적으로 꽃을 구매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화훼 소비량 수준은 세계 상위권이다. 미국인들은 특별한 선물을 할 경우 꽃을 사는 문화가 자리 잡고 있지만 정원, 실내외 테라스 장식, 크리스마스트리 용도로도 사용한다.
미국의 화훼 소비시장은 2008년 경제위기 전후로 주춤했으나 점차 회복하는 추세다. 2015년 미국 주요 15개주 화훼 생산액은 43억 6000만 달러를 기록했다. 1990년대 후반부터는 유기농으로 재배된 꽃과 공정무역으로 재배된 꽃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큰 절화 수입국이다. 최근에는 시장경쟁력을 잃고 화훼 농가가 감소하고 있다. 온실 등 시설 재배 비율이 높은 미국이 기후 조건과 노동력이 저렴한 남미, 동남아 등의 화훼 농가에 비해 가격경쟁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케냐
가격경쟁력 앞세워 세계시장 위협
▶ 아프리카 케냐 나이바샤 인근 화훼농장에서 수출을 위해 운반되는 장미 ⓒ연합
케냐의 화훼산업은 케냐의 소득원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케냐는 화훼산업 중에서도 수출에 사활을 걸고 있다. 케냐가 세계 화훼시장에서 매년 15% 내외의 수출 증가율을 보일 수 있는 비결은 기후가 따뜻해 온실이 필요치 않고 노동력이 저렴한 덕에 높은 가격경쟁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 낮은 노동비로 생산비 절감이 가능하고 생산기술 전문화와 최신 기술이 도입돼 경쟁력을 갖췄다. 노지재배 방식도 점차 온실재배 방식으로 전환하고 있다.
케냐는 유럽, 이스라엘 지역의 민간 기업에서 투자를 받고 있다. 그동안 케냐 화훼산업은 잘 조직된 상업 활동을 기반으로 수출 확대에 필요한 투자를 끌어왔다. 이러한 발전 모습은 케냐의 안정된 정치 상황과 산업 발전에 유리한 거시경제 변수의 역할이 컸다.
1980년대 케냐의 강력한 산업으로 성장한 화훼산업은 몇 가지 품종에 집중해 노지재배에 따른 저가 공략을 세웠다. 1990년대에는 기반시설 확충, 품질 개선 노력 등을 통해 수출액이 3배가량 증가했다. 2010년에는 세계 최대 화훼 경매장인 네덜란드 플로라홀랜드의 통신 화훼 경매 시스템을 도입함으로써 경매와 유통이 원활해졌다.
케냐 정부 입장에서 화훼산업은 인구를 농장으로 분산하며 도시화와 빈곤 퇴치 완화에 기여하는 방안으로 활용하고 있다. 케냐 주요 수출 대상지는 네덜란드다. 네덜란드에 대한 케냐의 수출물량은 전체 60~70%를 차지할 정도다. 저렴한 가격경쟁력을 내세워 세계 화훼시장에서 승승장구를 이어가는 케냐에도 위협 요소가 있다. 하나는 사회적·환경적 기준에 대한 요구와 다른 하나는 에티오피아, 에콰도르 등 신흥 강자의 등장이다.
선수현 | 위클리 공감 기자
자료│한국농촌경제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