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 유네스코 한국위원회와 미즈센터가 어느 기업과 공동으로 라오스의 가난한 청소년들에게 ‘희망의 운동화’를 나눠주러 가는 길에 동행했다. 수도 비엔티안에서 북쪽으로 60km밖에 떨어지지 않은 마을이었지만 가는 길은 멀고도 험했다. 산악지대인 데다 비포장에 좁고 굽은 길. 자동차는 엉금엉금 기었다.
쉴 새 없이 엉덩방아를 찧으며 4시간 넘게 걸려 도착해서 맨발인 아이들에게 운동화를 전해주고 돌아온 날 밤. 유네스코 라오스위원회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감사의 표시로 만찬을 마련했다. 비엔티안에서 제법 유명한, 라오스를 방문하는 외국인들도 많이 찾는 역사 깊은 전통 식당이었다.
그곳에서 잊지 못할 추억 하나. 유럽풍의 식당 정면 무대에서는 나이 지긋한 현지 연주자 서너 명이 각기 다른 라오스 전통 악기로 합주를 하고 있었다. 식당에는 미국, 일본, 프랑스, 영국 등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 손님들로 가득했다. 음식이 나오고 식사를 하는 동안에도 무대에서 연주는 이어졌다. 처음에는 라오스 음악인가 했더니 귀에 익은 멜로디였다. 각국의 민요나 가요였다. 연주가 끝날 때마다 그 나라 손님들이 박수를 보냈다.
궁금했다. 분명 한국 음악도 연주할 텐데. 어떤 곡일까. ‘대니 보이’로 영국인들의 박수를 받은 다음 이어진 곡. ‘고향의 봄’과 ‘아리랑’이었다. 머나먼 이국 땅, 그것도 우리와는 오랫동안 만남이 없었던 동남아 한구석에서 듣는 우리 노랫가락. 반가움과 감동에 용기를 내 무대로 나가 음치를 겨우 면한 주제에 창피한 줄도 모르고, 그들의 반주에 맞춰 맨목소리로 아리랑을 불렀다. 끝나자 모든 손님들이 환호로 화답했다. 그 가슴 뭉클함이란. ‘이래서 아리랑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공 남녀가 아리 랑을 흥겹게 노래하는 모습이 명장면으로 꼽히는 영화 ‘서편제’ . ⓒ동아DB
또 하나의 기억으로 남아 있는 아리랑은 임권택 감독의 영화 ‘서편제’에서 주인공 남녀가 돌담길을 따라 내려오면서 어깨춤과 함께 부른 ‘진도아리랑’이다. ‘문경새재는 웬 고갠고 구부야 구부구부가 눈물이 난다’고 그들이 흥겹게 노래하는 모습을 롱테이크로 담아 영화 미학으로도 명장면으로 꼽힌다. 그 구성진 아리랑 가락 속에 가난의 슬픔, 삶의 고단함과 실패의 아픔, 나라 잃은 백성의 서러움이 숨어 있어 ‘서편제’는 대한민국 국민들의 가슴을 울렸다. 아리랑이 남긴 잊지 못할 순간은 하나 더 있다. 2005년 가수 조용필이 평양 공연에서 피날레로 부른 ‘홀로아리랑’이다. 전통 민요가 아닌 대중가요로 만들어진 아리랑은 북한 주민들에게는 낯설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공연장을 찾은 7000여 명의 평양 시민들은 익숙한 노래와 가락을 대하듯, 자신들도 모르게 지시받은 엄숙한 관람 태도를 버리고 후렴구를 함께 부르면서 감격스러워했다.
한민족의 기쁨과 애환을 담은 깊은 울림
문화아이콘이자 세계적 문화콘텐츠
이렇게 아리랑은 누가 연주하고 불러도 그 솜씨를 떠나 우리 민족에게 울림을 준다. 감정을 하나로 만든다. 단조로운 듯 변화무쌍하고, 무심한 듯 울림이 깊고 넓은 우리 민족의 정서를 고스란히 담은 노래이기 때문이다. 오랜 세월, 우리의 살과 피에 스며들어 역사와 삶, 기쁨과 애환이 되어버린 아리랑만이 가진 힘이다.
그래서 아무리 낯설고 새로운 가사와 가락이라도 아리랑이라는 후렴구만 들어가면 금세 가슴에 와 닿는다. 이를 보고 구한말 미국인 선교사 헐버트는 "조선인에게 아리랑은 쌀"이라고 했다. 아리랑은 일제강점기에는 나운규의 영화 주제가로 민족 독립과 저항의 상징이었고, 나라 잃고 타국을 떠돌 때는 설움과 아픔을 달래주었으며, 예나 지금이나 한민족의 정체성을 지켜주고 있다. 아리랑을 부르면서 5000만 대한민국 국민은 한마음으로 한국 축구의 월드컵 4강 진출을 응원했고, 남과 북도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는 하나가 됐다.
이렇게 시대와 장소를 넘어 희로애락을 함께한 우리 민족의 대표적 문화유산인 아리랑의 가치를 세계도 인정했다. 2012년 유네스코가 아리랑을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한 것이다. 아리랑이야말로 한민족의 영원한 아이콘이자 가장 글로벌하고 경쟁력 있는 문화콘텐츠다.
아리랑의 매력은 자유로움과 다양성, 변형에 있다. 기원부터 그랬다. 하나이면서 또한 하나가 아닌, 지역과 시대와 사람마다 제각각의 정서와 가락을 가진 팔색조. 밀양에는 밀양아리랑이 있고, 정선에는 정선아리랑이 있다. 진도 사람들은 진도아리랑을 부르고, 해주 사람들은 해주아리랑을 부른다. 같은 진도아리랑이라도 부르는 사람마다 자신의 마음과 처지를 노랫말에 집어넣어 불러도 여전히 ‘진도아리랑’이다.
‘홀로아리랑’처럼 현대적인 리듬으로 바꾸어도 아리랑 가락은 혼자가 아닌 모두가 부를 수 있다. 가수 나윤선처럼 재즈와 접목해 프랑스인들을 매료시키는 또 하나의 아리랑도 있다. 분위기와 취향에 따라 장단과 고저를 변형해도, 심지어 랩과 결합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지난해 선풍적 인기를 끈 대중가요 ‘백세인생’에서 보듯 어떤 노래에 들어가도 어울린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본래 모습, 그 원형을 잃어버리지 않은 세계적 명품 가락이 바로 아리랑이다.
▶ 9월 29일 전북 전주 한국소리문화의전당에서 열린 ‘2016 전주세계 소리축제’ 개막 공연 글로벌연합팀의 ‘세상의 모든 소리’에서 합창단과 연주자들이 마지막 곡 ‘아리랑’을 부르고 있다. ⓒ뉴스1
지난 10월 8, 9일에 열린 ‘2016 아리랑 대축제’는 그것을 증명하는 무대였다. 아무리 유명한 곡이라도, 또 여러 가지 변주를 하더라도 오로지 하나로 축제와 콘서트를 꾸민다는 것이 가능이나 한 일인가. 그러나 아리랑은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오케스트라와 전통 악기, 국악인과 성악가와 대중가수, 피아니스트와 무용가가 아무런 어색함 없이 하나의 아리랑을 통해 서로 만났고, 서로 다른 역사와 삶의 무늬를 가진 지역 아리랑들도 한자리에 모여 제각각의 색깔을 뽐냈다.
밀양아리랑과 진도아리랑은 오케스트라와 어울렸고, 아리랑 랩소디와 환상곡도 무대에 올랐다. 아리랑은 타악기 퍼포먼스가 되기도 했고, 성악가의 가곡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하나가 아니었다. 같은 것의 지루한 반복도 아니었다. 각각이 하나의 음악이었고, 장르였고, 문화콘텐츠였다. 그러면서 마지막에는 객석까지 하나가 되어 부르는 합창으로 막을 내렸다.
이렇게 아리랑은 무한한 변주와 창조성과 독립성, 상호 융합의 힘으로 긴 세월 이어져왔고, 세대와 지역을 넘어 널리 퍼져나가면서 이제는 우리 민족뿐만 아니라 인류의 소중한 유산이 됐다. 영국은 비틀즈로 세계를 노래하게 했다. 우리도 어쩌면 언젠가는 가능할지도 모른다. 점점 매력적으로 진화하는 아리랑이 있으니까.
글· 이대현(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겸임교수) 2016.1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