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문화유산에는 나름의 의미가 있다. 그의미를 새롭게 해석하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후손들의 역할이다. 역사적으로 기념이 될 만한 거창한 유적이나 유물만이 문화유산은 아니다. 아무것도 아닌 듯 오랜 역사를 내려오면서 우리 곁에 있는 작은 예술품이나 누구나 쉽게 보고 사용하는 일상의 소품들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흔하고 익숙해 우리가 하찮게 여기는 것일수록 그 의미는 더 보편적이고 진솔할지도 모른다.
매듭과 부채도 그렇다. 매듭이 없는 나라는 없다. 인류 역사에서 부채도 흔한 물건이다. 고대부터 인간은 실과 끈으로 매듭을 만들었고, 지금도 갖가지 매듭이 존재한다. ‘매듭’은 묶음이다. 따라서 때론 그것이 속박을 상징하기도 하고, 막힘이나 마디를 의미하기도 한다. 일의 순서에 따른 결말을 대신하는 말로도 쓴다.
매듭은 비록 지어낸 이야기라고 하지만, 영웅의 비범함을 부각시키기도 한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칼로 잘랐다고하는 ‘고르디우스의 매듭’이다. 그는 아시아를 정복하는 사람만 풀 수 있다는 프리기아의 수도 고르디움에 있는 전차에 복잡하게 얽혀 있는 매듭을 칼로 잘라버렸다. 이때 매듭은 풀기 어려운 문제다.
일상생활의 한 방식인 매듭
독창성과 다양성 지닌 예술품으로
이처럼 단순하고 일상생활의 한 방식인 매듭에도 역사가 스며들고 상징과 해석이 붙는다. 그뿐이랴. 그것이 창의적 발상과 심미적 감각과 만나면 하나의 아름다운 예술이 되고, 그 예술이 생활양식이 된다. 전통 매듭공예가 그렇다. 여러 색깔의 실이나 끈으로 어우러진 매듭이 한복 단추가 되고 노리개가 됐다. 그리고 지금은 팔찌, 귀고리, 머리핀, 목걸이가 된다. 묶는 모양이나 실과 끈의 종류에 따라 같은 매듭이라도 그 모습이 개성적이다.
매듭 그 자체는 특별하거나 고유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민족 고유의 정서나 문화, 일상과 만났을 때는 독창성과 다양성을 갖는다. 하나지만 방식에 따라 저마다 모양을 가질 수 있고, 정서와 생활양식에 따라 다른 색깔을 낼 수 있는 것. ‘매듭’이야말로 독창성과 다양성을 동시에 지닌 예술품이면서 언어적 의미까지 만들어낸 문화유산의 상징이 아닐까.
매듭만 그런가. 부채는 어떤가. 인간이 인공적으로 바람을 일으키기 위해 만든 도구의 하나로 고대에서부터 시작됐다. 이 때문에 그 재료나 모양 또한 지역마다, 인종마다, 국가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야자수 잎으로 만든 것도 있고, 새의 깃털로 만든 것도 있고, 동물의 가죽으로 만든 것도 있고, 종이나 천으로 만든 부채도 있다.
▶ 매듭과 부채는 전통 관습과 예술을 만나면서 ‘또 하나의 도구, 또 하나의 예술’이 됐다. 사진은 우리 고유의 멋이 담긴 한국 전통 부채.
기후에 따라, 나라와 민족의 정서와 생활양식에 따라 부채 역시 같은 재료라도 그 모양과 크기, 느낌이 다르다. 중국과 일본과 우리나라의 것만 비교해봐도 알 수 있다. 동양에서 건너간 부채가 유럽에서는 17세기 프랑스를 중심으로 유행했지만 그 쓰임새가바뀌었다. 도구가 아닌 일종의 예술인 장식품이 되었다. 모양도 달라져 특히 ‘브리제’라는 노송나무 모양의 부채가 인기를 끌었다. 그 독창성은문명의 발달로 비록 ‘바람을 만드는’ 도구로서의 쓸모는 적어졌지만, 그 독창성은 지금도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부채 역시 언어로서의 의미를 만들어냈다. 우리에게는 ‘불난 집에 부채질’이란 속담이 말해주듯 감정이나 싸움, 상태의 변화를 더욱 부추기는 말이 됐다. 부채는 나눔과 함께하는 것의 상징으로도 해석한다. 옆 사람이 부채질을 하면 나도 시원하고, 내가 하면 옆 사람도 시원하기 때문이다.
매듭처럼 단순히 바람을 만드는 부채도 전통 관습과 예술을 만나면서 ‘또 하나의 도구, 또 하나의 예술’이 됐다. 전통혼례에서는 신랑과 신부가 얼굴을 가리는 의례용이 됐고, 화가와 서예가와 문인들의 아름다운 그림과 글씨, 문장을 담는 그릇이 됐다. 중국에서는 일찌감치 4세기에 왕희지가 부채에 글씨를 썼고, 우리나라에서도 조선시대 유명 화가인 정선, 심사정, 김홍도와 김정희 등이 ‘금강내산도’, ‘모란투작도’, ‘청람란도’ 같은 진경산수화와 사군자의 명작들을 부채에 남겼다.
부채의 생명력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춤꾼의 손에 쥐어지면 아름다운 춤사위가 되고, 소리꾼의손에서는 장단을 맞추는 악기가 되고, 굿판의 무당 손에 쥐어지는 부채는 혼을 부르고 악귀를 쫓아내는 부적이 된다. 부채의 바람은 이렇게 여러 색깔과 모양으로 분다.
아셈 문화장관회의서 매듭과 부채
세계 문화교류 바람 담은 상징 이미지
한국에서 처음으로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열린 이번 제7차아셈(ASEM, 아시아·유럽정상회의) 문화장관회의의 상징 이미지가매듭이었다. ‘문화와 창조경제’란주제와 매듭은 상통한다는 것이다. 매듭이 서로 다른 색깔을 가진 끈들이 엮여 하나의 새로운 예술작품으로 완성되듯, 창조산업 역시 다양한 문화, 아시아와유럽의 문화가 만나 상상력과 창의성 넘치는 콘텐츠를 탄생시키기 때문이라고 했다.
‘매듭’이 우리 전통공예로서의 예술적 의미에만 머무르지 않고 언어적 의미까지 확장하고 있을 것이다. 새로운 사고와 접근, 아름다운 매듭, 일을 마무리 짓는 매듭은 잘 엮고, ‘고르디우스의 매듭’처럼 풀기 어려운 것은 열린 마음으로 함께 과감하게 끊어내자는 뜻일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전제가 있다. 아셈 문화장관회의 본연의 역할인 문화유산의 보존과 문화 다양성 확대, 문화융성을 위해서라는.
부채도 상징으로 등장했다. 회의에 참가한 아시아와 유럽 문화장관들이 ‘문화와 창조경제’라는 문구가 쓰인 부채를 함께 펼쳐서 흔들었다. 그들은 안다. 그 부채 바람의 의미를. 자신들이 시작한 ‘문화와 창조경제’를 위한 협력과 소통의 다짐이 널리 퍼져 다른 지역, 나아가 전 세계의 문화교류 바람이 되기를 바란다.
▶ 6월 23일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열린 제7차 아셈 문화장관회의 개회식에서 각국 대표들이 함께 우리나라의 전통부채인 합죽선을 들고 기념촬영하고 있다.
아시아에도 유럽에도 매듭과 부채는 있다. 그것이 가진 용도나 의미도 비슷하다. 언어적 상징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다고 ‘하나’는 아니다. 이처럼 문화와 예술은 그 어떤 것도 ‘하나’일 수없고, 또 ‘하나’여서도 안 된다. ‘문화 창조경제’도 모든 나라가 한가지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색깔 다른 실들이 모여야 매듭이 되고, 여러 개의 부챗살이 한 묶음에서 퍼져야 부채가 되듯, 문화창조산업도 서로 손을 잡을 때 더욱 커질 것이다. 물론 나라마다 그 빛깔과 모양은 매듭과 부채만큼이나 서로 다르겠지만.
글 · 이대현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겸임교수) 2016.07.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