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궁 석조전에 특별한 해설사들이 등장했다. 초등학교 5~6학년으로 구성된 어린이 해설사들. 이들은 또래의 눈높이에 맞춰 쉽고 재미있는 해설을 추구한다. ‘어린이의, 어린이를 위한, 어린이에 의한’ 차별화된 대한제국 역사 해설 현장에 함께해보자.
▶ 접견실에서 외국 사신 대하는 법을 이야기하는 김민 양 ⓒc영상미디어
“저와 함께 대한제국으로 시간여행을 떠나보실까요?”
긴장감이 묻어 있지만 제법 야무진 목소리가 덕수궁 석조전에 울려 퍼졌다. 관람객들은 일제히 한 소녀에게 집중했다. 가슴에는 고종의 통천관과 오얏꽃 모양의 배지가 반짝인다.
지난 2월 4일 ‘석조전 대한제국 역사관 어린이 해설사’들이 데뷔전을 가졌다. 초등학교 5~6학년 20명으로 구성된 이들은 지난해 10월부터 12월까지 대한제국의 역사와 석조전에 대한 교육을 받고 여러 차례 실습을 진행해왔다.
덕수궁 석조전은 조선과 대한제국의 역사가 교차하는 곳이다. 1900~1910년에 걸쳐 서양식으로 지어진 궁이지만, 1919년 고종 승하 후 미술관, 회의장 등으로 사용되며 훼손됐다. 2009년 시작된 복원사업이 2014년 마무리되며 ‘대한제국 역사관’으로 재탄생했다.
어린이 눈높이에 맞는 맞춤형 해설
이날 1층의 중앙홀, 접견실, 2층의 회랑과 황제 침실 및 서재, 황후의 침실 및 거실 등에 어린이 해설사 5명이 배치돼 릴레이 형식으로 관람객을 맞았다. 석조전에는 베테랑 어른 해설사들도 있지만, 어린이 해설사들은 또래 눈높이에 맞는 차별화된 해설을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어렵게 느껴졌던 대한제국 역사에 쉽고 재미있게 접근하면서 40여 분간 대한제국 시대로 돌아갔다.
“석조전 곳곳에 대한제국의 상징인 오얏꽃이 있습니다. 봄에는 석조전 앞 정원에 자두나무 꽃이 피는데 참고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첫 번째 주자로 나선 김민(안양 신기초 5) 양은 매끄럽게 이야기를 풀어가며 석조전 중앙홀과 접견실로 관람객을 안내했다. 황실의 공적 업무가 이뤄지던 공간인 만큼 외국 사신들이 방문했을 때의 상황도 소개했다. 외국 사신들이 기다리던 과정과 황제를 알현하는 모습을 재현하며 이해를 돕기도 했다.
대식당으로 들어선 관람객들은 박시현(서울 서원초 6) 양이 맡았다. 외국 사신들이 먹던 음식과 당시 경복궁, 석조전에서 서양식 코스를 즐겼다는 기록을 소개했다.
“하나, 둘, 셋 하면 ‘얍!’ 하고 외쳐주세요.”
모두가 “얍!” 하고 주문을 외치자 벽 한 켠에 숨겨져 있던 석조전 내부 모습이 드러났다.
“밖에서 보는 석조전은 하얀 화강암으로 만들어졌지만 더 튼튼하게 짓기 위해 안쪽에는 벽돌을 쌓고 겨울철 동파 방지를 위해 새끼줄을 꼬아두었습니다.”
내부에 들어서야만 알 수 있는 건축구조의 비밀을 엿보는 순간이었다.
▶ 2층 회랑을 소개하는 정다연 양 ⓒc영상미디어
황실의 고풍스러운 계단을 따라 2층으로 가자 회랑이 나타났다. 2층 회랑에는 대한제국의 역사가 전시돼 있었다. 정다연(인천 관교초 6) 양은 재치 있는 해설로 관람객의 호응을 유도했다.
“덕수궁 이름은 원래 덕수궁일까요? 네, 원래 덕수궁은 ‘경운궁’이라고 불렸습니다. 여기 맞힌 친구에게 박수!”
문답풀이까지 섞은 재미있는 해설 덕에 연대별로 전시된 사진 하나하나를 소개하는 동안 관람객은 지루할 틈이 없었다.
▶ 황제의 침실 해설을 맡은 최민준 군 ⓒc영상미디어
다음으로 황제의 침실과 서재로 향했다. 황제를 상징하는 황금색 소품들로 가득한 방은 최민준(화성 아인초 6) 군 담당.
“황금색은 황제를 상징해 많은 사람들이 고종이 사용했을 거라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영친왕이 사용했어요.”
영친왕이 찍어둔 사진들은 오늘날 복원 자료로 활용됐다. 하지만 사적 공간인 이곳은 사진이 없어 가구에 남아 있는 ‘emperor’s bedroom/library(황제의 침실/서재)’ 도장이나 영국 제조회사의 카탈로그를 보며 유추해 복원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이진우(광명 광성초 5) 군은 황후의 침실과 거실을 소개했다. 이 군은 해설을 마치며 “3년이란 짧은 시간이었지만 대한제국의 고종 황제는 개혁을 시도했습니다. 간섭에서 벗어나려던 그의 의지만큼은 기억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당부했다.
“내년에는 저도 해설사로 올 거예요”
어린이 해설사들의 야무진 설명에 관람객의 박수가 터져 나왔다. 해설 첫날을 위해 이들은 누구보다 열심히 역사를 공부하고 밤새 대본을 암기하며 수도 없이 많은 연습을 해왔을 것이다. 해설을 마친 후 이진우 군은 “평소 역사에 관심이 많아 해설사에 지원하게 됐다. 어린이들에게 역사가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라며 각오를 다졌다. 정다연 양은 “해설을 하기 위해서는 듣는 사람보다 더 알아야 한다. 그래서 더 열심히 공부하는 계기가 됐다”고 소감을 전했다.
초등학생 자녀 둘과 함께 관람에 참여한 정원숙 씨는 “교실에서 배우는 것보다 기억에 남을 것 같아 오게 됐다. 이렇게 현장에서 직접 보고 배우면 아이들이 수업시간에 더 자신감을 갖고 학습에도 효과적인 것 같다”면서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며 나 또한 배우는 게 많다”고 말했다.
이날 해설사들은 간단한 퀴즈를 내고 정답자에게 기념품을 증정했다. 퀴즈에서 선전하며 오얏꽃 배지를 2개나 받은 이아경 양은 “기회가 되면 해설사가 돼서 석조전을 다시 찾고 싶다”며 내년을 기약했다.
덕수궁 석조전 ‘어린이 전시해설 관람’ 안내
일시 매주 토요일 오전 10시 10분, 11시 15분 (2회)
장소 덕수궁 석조전 대한제국 역사관
신청 덕수궁 누리집(www.deoksugung.go.kr)에서 사전예약
대상 어린이 또는 어린이를 포함한 가족, 선착순 15명
※ 성인만은 신청할 수 없음
관람료 무료
문의 02-751-0752
어린이 해설사가 되려면?
대상 초등학교 5~6학년
모집 일정
9월 : 홍보 및 모집, 10~12월 : 교육, 2~8월 : 해설사 활동
내용 석조전 및 대한제국 역사에 대한 교육 실시 후 어린이 해설사로 활동
선발
1차 서류심사
- 구비서류 : 지원서, 자기소개서, 학부모 동의서
- 우대사항 : 한국사능력검정시험 합격자 및
문화해설, 기자단, 문화재 관련 활동 등 경력사항
2차 면접심사
- 적극성, 지속성, 인성, 발표력 등 100점으로 평가
- ‘대한제국 황실인물이 되어 석조전 소개하기’ 1분 이내
혜택 및 지원
- 어린이 해설사 신분증 발급, 홍보물 및 기념품 제공
- 봉사활동 확인서 발급(1365자원봉사)
- 덕수궁 주변(정동) 지역 문화답사 참여 기회 제공
※ 상기 모집은 2016년 기준으로 변경될 수 있음.
선수현 | 위클리 공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