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8월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리는 하계올림픽에서 큰 관심을 모으고 있는 종목 가운데 하나가 바로 골프다. 프로 스포츠로서 대중적 인기를 더하고 있다는 점 외에도 112년 만에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복귀한 첫 대회라는 상징성 때문에 더욱 그렇다.
골프는 1900년 파리올림픽에서 처음으로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다. 파리 대회는 1896년 그리스 아테네에서 근대올림픽이 부활한 이후 두 번째 대회였으니 골프는 올림픽의 ‘원년급 멤버’였던 셈이다. 하지만 지나치게 귀족 스포츠의 이미지가 강한 데다 대중화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1904년 세인트루이스올림픽을 끝으로 올림픽대회에서 사라졌고, 다시 돌아오기까지 100년이 훌쩍 넘는 긴 세월이 필요했다.
남녀부 개인전 각 1개씩 금메달
한국, 4장의 본선 티켓 사실상 확보
리우올림픽에서 골프가 국내 팬들에게 유난히 관심을 끄는 이유는 여자골프에서 금메달을 따낼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기 때문이다. 한국 여자골프는 최근 몇 년 사이 세계 최고 수준의 투어인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를 휩쓸며 최강국의 입지를 다지고 있다. 과연 리우에는 어떤 선수들이 출전할까. 또 실제로 금메달 가능성은 어느 정도일까.
첫째, 대회 방식부터 살펴보자. 단체전은 없고 남녀부 개인전에 각 한 개씩 금메달이 걸려 있다. 만일 단체전이 있었다면 한국의 금메달 가능성은 더 높았을지도 모른다. 5월 30일 현재 발표된 여자골퍼 세계랭킹에서 한국은 10위 안에 무려 5명이나 포진해 있다. 미국이 2명으로 그 뒤를 잇고 뉴질랜드와 캐나다, 태국이 한 명씩을 보유하고 있다. 한국이 수준급 골퍼를 많이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 랭킹에서도 확인된다.
올림픽 개인전은 나흘간 스트로크 플레이 방식으로 경기를 펼쳐 메달을 가린다. 보통의 투어 대회와 경기 방식이 같다. 여자부 경기는 8월 17일부터 20일(현지시간)까지 열린다. 올림픽 출전 선수는 7월 11일까지의 세계랭킹을 근거로 남녀 모두 60위 안에 들어야 출전이 가능한데 세계랭킹 15위 이내는 국가당 최대 4명까지, 16위부터는 국가당 2명까지 출전할 수 있다. 당연히 한국은 4장의 본선 티켓을 확보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둘째, 누가 출전할 것인가를 따져보자. 출전 자격이 주어지는 랭킹 15위 안에 한국 선수는 현재 박인비(2위), 김세영(5위), 전인지(7위), 장하나(8위), 양희영(9위), 류소연(12위), 김효주(14위) 등 무려 7명이 포진해 있다. 이보미(16위), 박성현(18위)도 호시탐탐 출전 순위권 진입을 노리고 있다. 그만큼 리우올림픽에 출전하기 위한 내부 경쟁이 치열하다.
▶ 왼쪽부터 김세영, 전인지, 장하나, 김효주 선수.
특히 여유 있게 2위를 달리고 있는 박인비와 달리 5~9위권 선수들은 남은 기간 동안 언제든지 순위가 바뀔 수 있다. 10위권 밖의 선수들도 투어 우승에 따라 극적으로 본선행 티켓을 따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7월 11일 출전 엔트리 확정 이전까지 메이저 대회가 두 개나 열린다는 게 큰 변수다.
6월 9일 시작하는 KPMG 위민스 PGA 챔피언십과 7월 7일 개막하는 US여자오픈 등 두 개의 메이저 대회는 랭킹 산정 점수가 높다. 여기서 우승을 차지하면 지금 랭킹이 조금 불안해도 역전극을 충분히 노려볼 만하다. 박인비를 제외한 나머지 티켓 3장의 주인공은 아직 유동적인 요소가 많다고 볼 수 있다.
▶ 리우올림픽 여자골프의 유력한 금메달 후보로 꼽히는 박인비. 최근 연이은 부상으로 컨디션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올림픽이라는 명예와 상징성 그리고 만만치 않은 실리 때문에 선수들은 리우에 꼭 가고 싶다는 의욕을 보이고 있다. 리우올림픽 금메달리스트에게는 올해 에비앙 챔피언십부터 내년 US여자오픈까지 5대 메이저 대회 출전권이 주어진다. 또 대한골프협회는 금메달에 3억 원, 은메달 1억5000만 원, 동메달 1억 원의 포상금을 내걸면서 분위기를 띄우고 있다.
마지막으로 금메달의 가능성을 점쳐보자. 국내 팬들은 최근 몇 년간 태극낭자들의 위세가 워낙 대단했던 터라 메달은 기본으로 여기면서 ‘메달 색깔’에 무게를 두는 분위기다. 하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 우선 부상 변수가 있다. 무엇보다 에이스 격인 박인비의 부상이 걱정이다. 지난해 LPGA 투어 5승을 올렸고 세계 최강으로 통하는 박인비는 올해 연이은 부상으로 별다른 성적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5월 말에 끝난 볼빅 챔피언십에서는 1라운드만 마치고 기권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왼쪽 엄지손가락 인대 부상으로 한 달을 쉬고 이 대회에 복귀했는데, 그만 통증이 재발했다. 박인비는 올 시즌 개막전인 바하마 LPGA 클래식에서도 허리 통증으로 중도 기권해 한 달 동안 치료와 휴식을 취했다. 사실상 시즌이 개점휴업 상태나 마찬가지였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부상에서 정상 컨디션 회복이 점점 늦어진다면 박인비 스스로가 올림픽 출전을 고민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세계랭킹 2위이니 출전권 확보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부상에서 완전히 회복되지 못한 상태에서, 또는 경기 감각을 충분히 끌어올리지 못한 상황에서 올림픽에 출전하는 것은 심리적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잘하는 후배들이 넘쳐나는 상황이라 더욱 그렇다. 컨디션 회복 여부에 따라 ‘후배들을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올림픽 출전 티켓을 반납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 만약 그런 최악의 상황이 벌어진다면 한국은 가장 강력한 금메달 후보를 잃어버리는 결과가 된다.
8위 장하나도 전인지와의 ‘고의성 충돌 사고 소동’ 이후 정신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우리 선수들은 지난해 투어의 절반에 해당하는 15승을 거두며 역대 최다승 기록을 경신했다. 기세는 올해도 이어져 LPGA 개막전에서 김효주가 우승하고 장하나가 2승을 올리는 등 초반에는 승승장구했지만 최근에는 상승세가 크게 꺾인 모습이다. 가장 최근 대회인 볼빅 챔피언십에서 톱 10에 김효주 홀로 이름을 올린 것이 이런 침체된 분위기를 반영한다.
태국 주타누간 3연속 우승으로 돌풍
낯선 코스에 바닷바람 변수도
태극낭자들이 ‘내우’에 시달리는 동안 리우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노리는 막강한 경쟁자가 등장하는 ‘외환’마저 벌어지고 있다. 그동안은 세계랭킹 1위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리디아 고(뉴질랜드 교포) 정도만을 한국의 금메달 획득에 유일한 걸림돌로 여겼지만 최근 들어 투어 상황이 급변하고 있다. 무서운 상승세를 보이고 있는 아리야 주타누간(태국) 때문이다.
주타누간은 최근 LPGA 투어에서 3개 대회 연속 우승을 달성하며 선풍을 일으키고 있다. 세계랭킹도 10위로 급상승했다. 3개 대회 연속 우승은 2013년 박인비 이후 3시즌 만의 일이었다. 그동안 ‘새가슴’으로 불리며 번번이 우승 문턱에서 좌절했던 주타누간은 마수걸이 우승에 성공한 이후 멘탈 면에서 마치 ‘알을 깬 듯’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지금은 가장 유력한 금메달 후보라고 평해도 손색이 없다.
마지막으로 코스 변수가 있다. 대회가 열리는 바라다치추카 골프장의 올림픽 코스는 바다를 낀 해변 코스다. 자연히 바닷바람이 강하고 호수급 워터해저드도 2개나 된다. 그린 주변에는 벙커도 빼곡하다. 링크스 코스는 아무래도 우리 선수들에게 상대적으로 낯선 편이다. 대회 당일의 여러 가지 변수가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따져보니 금메달을 향한 태극낭자들의 도전이 마냥 수월할 것 같지만은 않다. 그래서 이번 도전이 더욱 의미가 있을지도 모른다. 리우에 가는 4명이 누가 되든 국내 팬들의 따뜻한 성원에 힘입어 좋은 결과를 내주기를 기원해본다.
글 · 위원석 (스포츠서울 체육1부장) / 사진 · 동아DB 2016.06.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