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타주>는 정근섭 감독이 직접 시나리오를 쓴 영화다.
“2010년에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는데 공소시효 문제로 사회가 정말 시끄러울 때였다. 이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아이잃은 엄마를 주인공으로 생각하게 됐다. 처음엔 단편으로 썼다가 몇몇 장면들의 규모가 커서 장편으로 바꿨다.”
‘아이 잃은 엄마’라는 주인공의 캐릭터가 정해지면서 캐스팅도 자연스럽게 결정됐다. 엄정화가 이 시나리오에 관심을 보인 것. 그는 <오로라공주> <베스트셀러> 등 공포, 스릴러 장르에 단련돼 있었고, 두 영화에서 절박한 모성애를 선명하게 보여준 바 있다.
“정말 쉬운 장면이 하나도 없었다. 아이를 잃은 엄마의 감정을 계속 가지고 가야 했으니까. 나도, 정화씨도 아이가 없어서 함께 많은 고민을 했다. 그러다 한 스태프의 목격담을 듣고 엄정화씨에게 전해줬다. 교통사고로 현장에서 숨진 아이의 엄마가 아이를 향해 달려오는 모습을 직접 본 얘기였다. 슬픔이며 노여움이란 감정이 끼어들 겨를도 없는, 모든 것이 하얘진 듯한 사람의 표정이었다고 한다. 달려오자마자 아이의 상처 입은 얼굴을 티셔츠로 가리더란 얘기가 가슴이 아팠다. 자식의 상한 모습을 내보이기 싫은 어미의 마음이었겠지. 다행히 엄정화씨가 그런 감정을 잘 표현해줬다.”
소위 타입캐스트(배우에게 유형이 고정된 배역을 맡기는 것)의 전형인 셈이다. 극중 형사 역으로 등장하는 김상경 역시 <살인의 추억>(2003)에서 형사 역을 훌륭하게 소화한 경험이 있는 배우다. 물론 이번 영화에서 김상경의 이미지는 그동안 보여줬던 모습과 다르다.
“김상경씨에게는 ‘강한 남자’가 되어달라고 주문했다. 지금까지 맡아온 캐릭터가 젠틀한 편에 가까웠다면, 좀 더 거칠고 바닥에서 구르는 모습을 보여주길 원했다. 나중에는 삭발을 하겠다고 나설 정도로 캐릭터에 몰입하더라. 물론, 말렸다(웃음).”
<몽타주>는 시간차를 유연하게 활용한 영화다. 15년 전 발생했던 유괴사건과 현재의 유괴사건, 그리고 하경(엄정화)이 범인을 찾아나서는 이야기를 마치 같은 시간대에 일어난 것처럼 구성해 시간의 재구성을 시도했다.
“<몽타주> 이전에 준비하던 작품이 투자까지 갔다가 엎어졌는데 그 시나리오가 시간을 다루는 영화였다. 그때 고민을 너무 많이 해서 훈련이 됐는지 이번에는 괜찮았다(웃음). 사실 그런 구성이 관객에게 어렵지 않을까 고민을 많이 했다. 그럴 때마다 <메멘토>(2000)를 봤을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며 힘을 냈다. 엄청나게 복잡한 얘기인데도 흥행이 됐다. 비슷한 구성의 <바벨>(2006)도 나름의 마니아층을 형성했고.”
그만큼 정 감독은 시간을 소재로 한 영화에 확신이 있었다.
<몽타주>는 관객에게 게임을 하자고 손을 내미는 영화기도 하다. 극의 흐름에서 반전을 눈치챌 수 있는 장치가 눈에 띈다.
영화 전반부에서 하경은 청호(김상경)에게 음성 메시지를 남기는데, 중반부에 그 장면이 다시 나오면서 사건의 복선을 암시한다.
“캐릭터 자체로 울림 주는 본격 스릴러 만들고 싶다”
“아예 힌트를 안 주면 그건 불공정한 게임이 되는 거다. 살짝 힌트를 줄 때 지적 유희를 즐길 수도 있는 거고. 그런데 이런 장치들 때문에 관객들이 반전을 미리 눈치챌 거라는 우려가 많았다.
나도 걱정은 됐지만 시사회 때 반응이 좋아서 마음을 놨다. 반전을 미리 알더라도 나중에 퍼즐을 맞춰가는 희열을 느낄 수도 있지 않나.”
정 감독이 <몽타주>를 연출하기까지는 무려 10년의 세월이 걸렸다. 그래도 그는 그 시기를 좌절의 세월로 기억하지 않는다.
“영화계가 힘들어졌을 때 이 바닥을 떠난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대리기사로 아르바이트 뛰는 친구들이 많아서, 술 먹으면 대리운전 부르기가 겁난다고 할 정도였으니까. 나도 <달마야 놀자> 끝나고 5년 정도 준비했던 작품이 엎어지고, 영화 외적인 것들로 고생하면서 굉장히 힘들었다. 아는 사람 회사에서 잠깐 일하기도 하고. 그래도 시나리오 계약은 꾸준히 했다. 영화화가 안 돼서 그렇지(웃음).”
그 10년의 세월을 버틸 수 있었던 데는 한 장면에 대한 욕망이 강했기 때문이다.
“<몽타주>를 놓지 않았던 건, 하경이 오열하는 신 그거 하나다. 그 장면을 꼭 연출해서 영화관에서 보고 싶다는 그 욕망 하나로 긴 세월을 버텼다.”
이 장면은 정근섭 감독이 가장 공들인 장면이면서 엄정화에게 가장 어려운 장면이기도 했다.
“하경이 죽은 아이를 안고 오열하는 신은 촬영하면서 가장 어려운 장면이었다. 차에서 내린 하경은 그 상황을 절대로 믿고 싶지 않은 심정으로 천천히 걷다가 아이의 신발이 발에 걸리는 순간 현실을 직시하게 된다. 부정해왔던 사실이 한번에 무너지는 거지. 한 장면에 두 개의 감정이 들어가야 했기 때문에 참 어려웠다. 다행히 엄정화씨가 한 번에 해냈다.”
<몽타주>는 무거운 이야기를 힘 있게 끌고 가는 감독의 집요한 근성이 빛을 발하는 영화다. 탄탄한 서사, 배우들의 호연은 영화에 탄력을 더했다.
“플롯도 중요하지만, 캐릭터로 움직이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 그 캐릭터, 그 사람 자체가 울림을 줄 수 있는 영화. 더 본격적인 스릴러도 만들어보고 싶은 욕심이 있다. 차기작은 사극을 구상중이다.”
글·지용진(중앙일보 매거진 M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