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 라띠마>는 외국인 노동자 마이 라띠마(박지수)가 한국에서 편견과 폭력에 시달리다 우연히 만난 수영(배수빈)과 서울로 올라오면서 새로운 삶을 사는 과정을 그렸다. 겉으로 보면 멜로 영화를 표방하고 있지만, 그저 눈물을 자극하는 최루성 드라마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이 영화에는 서울에서 악전고투하는 마이 라띠마의 시선이 담겨 있다. 이를 통해 대한민국 사회에 만연해 있는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편견과 청년 실업의 그늘진 풍경, 그리고 노숙자 같은 소수자에 대한 사회의 무관심 등을 세밀하게 묘사했다.
유지태 감독은 “장 피에르 다르덴 감독이 ‘극영화가 다큐멘터리보다 더 리얼하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그 말에 동감한다”며 “극영화로도 사회에 비판적인 사실주의 영화를 충분히 만들 수 있다고 본다”고 말한 바 있다. 평소 봉사활동 등에 적극적인 그는 사회문제에도 관심이 많은 것으로 유명하다. 외국인 노동자는 그가 예전부터 영화로 다루고자 했던 소재이기도 했다.
유 감독은 “인생의 목표가 사회복지사”라고 할 만큼 봉사활동에 애착이 많은데, 서울 YMCA 홍보대사, 월드비전 홍보대사로 활동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알려진 사람이 봉사활동을 하면 나비효과가 더 크다. 유명인으로 살면서 소외계층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가고 싶다”
어쩌면 유 감독은 <마이 라띠마>를 통해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는 이주노동자의 척박한 삶을 사회에 환기시키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극단적인 방식으로 화두를 던졌다. 센 화면으로 소재를 부각시킨 것. 영화는 마이 라띠마가 겁탈당하거나 폭력에 노출되는 장면을 굉장히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감독으로서 고민인 게, 과연 어디까지 진짜여야 하는가에 대한 부분이다. 솔직히 몇몇 감독들은 배우를 학대하면서까지 사실성을 강조하는데, 문제는 그런 모습이 화면에 나오지 않는다면 굉장히 소모적이라는 점이다. 폭력적이거나 노출이 심한 장면은 최대한 사실적으로 촬영해야 관객들을 설득시킬 수 있다고 보지만 배우들의 입장도 생각해야 한다.”
유 감독은 지독한 영화광으로도 유명하다. 그가 늘 소지하고 다니는 아이패드 미니에는 평소에 챙겨 보지 못한 영화들이 빼곡하게 저장돼 있다. 당연히 <마이 라띠마>는 그가 평소에 존경했던 감독들의 작품이나 좋아했던 영화들의 영향을 받았다.
“수영이란 캐릭터를 생각하면서 아벨 페라라 감독의 <배드캅>이 떠올랐다. 도덕적으로 타락한 남자가 등장하는 영화인데, 수영의 모습을 만들면서 영감을 받았다.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감독의 <정사>에서 느껴지는 아찔한 정서를 영화에 녹여내고 싶었고,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펀치 드렁크 러브>의 유니크하고 개성 강한 캐릭터도 참고했다.”
‘배우 출신 감독’이란 편견과 싸우는 중
무엇보다 <마이 라띠마>는 그의 열정이 빚은 결과물이다. 그가 자신의 데뷔작에 배수빈을 선택한 것도 이 때문이다.
“3년 전 DMZ국제다큐멘터리 영화제에서 우연히 수빈씨의 모습을 봤다. 시간표를 체크해 가면서 다큐멘터리를 꼼꼼히 챙겨보더라. 그 모습이 굉장히 순수하고 열정적으로 보였다. 사실 우리 나이쯤 되면 돈만 좇으며 연기를 하는 생활형 연기자들이 많다. 그걸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수빈씨와 이야기를 나누다 시나리오를 주면서 모니터를 부탁했다. 사실 시나리오에서는 수영이 열아홉 살 소년이었는데, 수빈씨로 캐스팅하면서 나이를 수정했다.”
우여곡절도 많았다. 세상의 모든 일이 그렇듯 순수와 열정만으로 되는 일은 드물다. <마이 라띠마>는 투자자로부터 지원을 받기로 한 후 3년간 공백 상태로 붕 뜬 시기를 보냈다. 결국 유 감독은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직접 영화를 제작하기로 했다.
“사실 배우가 영화를 만든다니 편견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특히 어떤 감독은 ‘너 이제 영화 찍으면 나중에 연기 못해’라는 말도 하더라.”
하지만 그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투자사의 번복, 지인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영화를 찍고, 개봉하겠다는 일념으로 현장에 덤벼들었다.
“현장에서 하루에 25컷 이상 촬영하지 않았다. 배우로 일하면서 깨달은 건데, 컷이 많아진다고 작품의 질이 좋아지는 건 아닌 것 같다. 그리고 영화 제작 지분의 70퍼센트를 스태프에게 돌려주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저예산 영화라고 재능기부를 한다는 개념은 지양해야 한다고 본다. 저예산 영화일수록 스태프의 처우나 작업 환경에 더 신경 써야 한다.”
배우 출신 감독이라는 꼬리표의 무게도 그를 억눌렀다. 하지만 그럴수록 유연하게 대처했다.
“사실 배우 출신 감독이라는 꼬리표가 어떤 때는 벽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수빈씨한테도 감독님 호칭을 빼고 그냥 지태씨라고 불러달라고 했다. 조감독은 날 ‘지태형’이라고 한다(웃음).”
유 감독은 매사에 철저하다. 인터뷰 내내 ‘경영’이라는 단어를 자주 꺼냈는데 그는 “시간을 잘 관리하는 것이 곧 삶을 잘 경영할 수 있는 길”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유 감독은 굉장히 부지런한 사람이다. 시간을 쪼개고 쪼개 하루를 살아간다. 그는 “새벽에 일어나 공부하고 운동을 하며 하루를 시작한다”며 “스케줄이 많을 때도 틈나는 대로 시간을 잘 활용하는 것이 행복하게 사는 방법”이라고 강조한다.
그의 철저함은 아내에게도 투영된다.
“집안일은 효진이와 나눠서 한다. 사실 아버지 세대만 해도 부엌일은 여자가 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있었을 거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남자들도 적극적으로 가정 일을 해야 하는 시대다. 한국 남자들 반성을 좀 많이 해야 한다(웃음).”
유 감독은 꾸준히 자기분열을 통해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나고 있다. 배우이자 감독으로서, 한 여자의 남편으로서, 그리고 사회봉사에 적극적인 활동가로서 그는 자신을 세상이라는 무대에 끊임없이 올리고 있다.
글·지용진(중앙일보 매거진 M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