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열린 제86회 피티 우오모(Pitti Uomo)는 한국 패션산업의 중요한 이정표가 될 전망이다. 6월 17일부터 20일까지 열린 이 행사에서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지원을 받은 국내 디자이너들이 자리를 빛냈다. ‘피티 우오모’는 세계 최대 규모의 남성복 전문 수주박람회로 1972년부터 시작됐다. 해마다 1월과 6월, 연간 2회에 걸쳐 피렌체를 중심으로 개최된다. 이번 행사에는 세계 각국의 1,100개 브랜드와 2만명의 마케팅 담당자, 1만6천명의 패션 홍보전문가들이 참석했다.
올해 행사에는 한국·이탈리아 수교 130주년을 맞아 한국이 주빈국으로 참가했다. 고태용·서병문·이주영·장영철·최진우·한현민·홍승완 등 7명의 디자이너들이 ‘콘셉트 코리아 앳 피티 우오모’ 특별전시관을 운영했다. 신진 디자이너 판로개척지원 사업으로 선정된 기남해(바스통)·서병문(병문서)·김동주(웨스티지) 등 신진 디자이너 브랜드들은 단독 전시에 참여했다.
한국의 특별전시관과 단독 전시에는 행사 기간 내내 수많은 해외 바이어가 몰렸다. 최근 높아진 한국 문화(한류)에 대한 관심이 패션으로까지 확장되는 모양새다. 외국 바이어들은 우리나라의 개성과 독특한 감성을 담은 패션에 좋은 평가를 내렸다. 이번 행사기간 동안 약 23억원에 달하는 계약이 성사됐다. 아직 추가적인 계약이 진행되고 있는 만큼 더 높은 성과를 올릴 수 있을 전망이다.
7월 15일 서울 마포구 연남동 바스통 매장에서 피티 우오모에 참가했던 기남해 대표를 만났다. 이탈리아에서 귀국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여독이 풀리지 않은 상태임에도 목소리에는 열정이 넘쳤다. 그는 “(이번 행사에서) 한국 패션의 가능성과 과제를 동시에 봤다”고 말했다.
디자이너에게 ‘피티 우오모’ 참가는 어떤 의미인가요?
“피티 우오모는 패션업계의 ‘아카데미 시상식’이라 불릴 만큼 규모가 크고 중요한 행사예요. 전 세계 패션의 트렌드를 가장 빠르게 느낄 수 있는 행사죠. 브랜드를 홍보하는 데 집중하는 보통의 패션쇼와 달리 피티 우오모에서는 직접 바이어들을 만나고 계약까지 이뤄져요. 인지도가 낮은 브랜드가 해외에 진출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기회죠. 실제 우리 브랜드(바스통)도 이번 행사에서 1억원이 넘는 계약을 체결하는 데 성공했어요. 추가 계약 논의도 하고 있어요.”
신진 디자이너 판로개척지원 사업자로 선정돼 행사에 참가했습니다.
“한국의 문화를 표현할 수 있는 디자인으로 프레젠테이션 경쟁을 통과해 최종 선정되었습니다. 좋은 옷과 디자인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콘셉트가 명확해야 합니다. 저는 바스통의 옷들을 컴퓨터그래픽으로 한국의 역사적 인물에게 입히고 민화의 느낌이 나는 그림을 그렸어요. 현대적 감각의 옷이 한국 고유의 문화와 만났을 때 발생하는 시너지를 디자인으로 표현했죠.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에서도 흥미를 끄는 데 성공했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지원이 도움이 됐나요?
물론 피티 우오모는 단독 브랜드로도 참가가 가능합니다. 하지만 정부 지원이 없었다면 훨씬 복잡하고 어려운 길을 가야 했을 거예요. 특히 규모가 영세한 브랜드 입장에서 피티 우오모 참가는 쉽지 않죠. 그밖에도 다방면으로 도움을 받았습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전문가들을 초빙해 수차례 교육을 해 줬어요. 해외 바이어들과 만나서 어떻게 제품을 알리고 어떻게 계약을 맺는지 배울 수 있어 큰 도움이 됐죠.”
한국 패션에 대한 해외의 반응은 어땠나요?
“많은 국가, 많은 브랜드가 한국의 패션에 관심을 나타냈어요. 한국의 독특한 콘셉트와 문화를 상당히 흥미롭게 생각했어요. 가격이 저렴하면서 질 좋고 아이디어 넘치는 패션이라는 평가가 많았죠. 반대로 개선해야 할 부분도 많다고 느꼈어요. 아직까지 해외에서 한국 패션의 인지도는 상당히 낮아요. 우물 안 개구리예요. 세계 패션업계 진출로는 이제 걸음마 단계죠. 지금의 성과에 만족하지 않고 더 정진해야 할 때라고 봅니다.”
한국 패션산업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두 가지가 중요하다고 봐요. 우선 패션업계에서도 박찬호와 박세리가 나와야 합니다. 스타 플레이어가 해외에서 성공하는 모습을 보고 성장한 사람들이 지금은 훌륭한 야구선수, 골프선수가 돼 국위선양을 하고 있잖아요. 패션업계에서도 그런 스타가 나온다면 더 좋은 후배 디자이너들이 등장하고 해외에서의 인지도도 올라갈 것 같아요. 또 하나는 경험이 필요합니다. 한국에서 생각하는 것과 해외 현지에서 실제 벌어지는 일은 차이가 커요. 직접 해외에 나가서 더 많이 보고 느껴야 해외에서도 성공할 수 있는 패션이 탄생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피티 우오모 같은 해외 행사에 더 자주, 더 많은 국내 브랜드가 참여했으면 좋겠습니다.”
글·박성민 기자 2014.07.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