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산 자동차는 잘 나간다. 시간이 지나면서 고장이 잦아지고 유지·관리 비용이 늘어난다. 사고 확률도 높아진다. 결국 오래된 자동차는 폐차의 수순을 밟는다. 김용수 한양대 원전해체연구센터장은 원전도 마찬가지라고 설명한다. 원전을 건설한 것처럼 해체 역시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잘 사용했으면 마무리도 잘해야 한다. 노후 원전의 아름다운 퇴역을 위한 준비도 필요하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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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해체는 건설만큼 자연스러운 과정입니다.”
고리 1호기가 40년의 가동을 중지한 지금, 노후 원전을 해체하는 이야기가 낯설지 않게 다가온다. 그러나 불과 4~5년 전만 해도 이러한 김용수 한양대 원전해체연구센터장의 발언은 원자력학계에서 불편하기 그지없던 내용이었다. 그것도 원자력공학과 교수가 이런 말을 하다니, 원자력학과 신입생은 “이제 배우기 시작했는데 해체를 이야기하면 어떡하느냐”고 투덜대기도 했다. 김 센터장은 “원전해체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건 원전 전문가의 역할”이라며 “노후 원전의 안전한 퇴역을 위해 해야 할 일이 많다”고 말했다. 또 세계 원전해체 시장의 선점을 위한 대비 필요성을 강조했다.
한양대 원전해체연구센터는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교류를 지속하며 국제 콘퍼런스도 진행 중이다. 지난 2015년에는 후행핵주기공학과를 개설했다. 원전을 중심으로 설계, 건설, 운영을 선행이라 하고, 폐기물을 후행이라고 하는데 후행핵주기공학과는 원전해체 전문가를 양성하는 학과다. 입학생은 꾸준히 늘고 있다. 그만큼 원전해체의 중요성을 깨닫고 관심을 갖는 인재가 늘어나고 있다는 방증이다.
원전해체는 원전을 영구정지한 뒤 방사능 오염을 제거하고 시설과 부지를 철거하는 활동을 말한다. 가동을 중지한 원전은 즉시 해체에 들어가도 5년여의 준비기간이 필요하다. 이 기간에는 원전 시설과 부지가 방사능에 얼마만큼 오염됐는지 측정하고 방사능 오염의 특성을 평가한다. 그다음 어디부터 해체에 들어갈지 전략을 세운다. 해체는 방사능과의 싸움이다. 방사능 오염을 제거하는 단계를 ‘제염’이라고 한다. 제염은 한두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제염 과정을 수없이 반복해도 방사능은 여기저기 쌓여 있다. 콘크리트 벽에 쌓인 방사능이 더 이상 검출되지 않을 때까지 긁어내야 그 과정이 끝난다.
방사능 오염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방사능 가루, 철근 등의 폐기물이 발생한다. 폐기물은 모으고 농축해 최대한 줄여나간다. 화학처리 과정을 거치며 폐기물을 5분의 1에서 10분의 1로 농축하는 게 관건이다. 독일은 50분의 1까지 줄였다고 국제기구에 보고했다. 높은 기술력 덕분에 가능한 수치다. 김 센터장은 “고리 1호기 해체의 성패도 5분의 1 수준까지 농축할 수 있느냐에 달렸다”고 했다. 방사능 오염을 모두 제거하면 철거하고 부지 복원에 들어갈 수 있다. 이 작업은 평균 10~12년 소요된다. 미국은 4~5년, 독일은 20년이 걸리기도 했다.
▶ 1 우리나라 원전 최초로 영구 정지에 들어간 고리 1호기는 해체 시장을 열어갈 자산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연합 2 한양대 원전해체연구센터가 세계 원전해체 경험을 연구하며 축적해온 자료. 각 파일마다 해체한 원전의 명칭이 적혀 있다. ⓒC영상미디어
고리 1호기 영구정지 계기로 관련 기술·경험 축적
원전해체 시장은 급속하게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1960~1980년대 건설을 시작한 원전 사용기한이 임박함에 따라 2020년 이후 해체에 들어가는 원전이 급증할 것이다. 2030년경이면 원전해체 시장이 본격적으로 열릴 것으로 예상된다. 김 센터장은 “원전해체 시장은 440조 원으로 추산되는데 여기에 실험로, 핵변환 시설 등 해체 시장 전반을 더하면 1500조~2000조 원까지 확대될 것”으로 내다봤다.
IAEA의 권고도 해체 시장에 불을 붙일 것으로 전망된다. 김 센터장은 1980~1990년대 이탈리아, 스페인을 시작으로 가동 정지에 들어간 원전은 지금까지 총 164기에 이르지만 가동을 멈췄을 뿐, 해체에 착수한 원전은 18~20기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해체 초기만 해도 기술이 부족했고 비용 또한 가늠할 수 없어 지금까지 미뤄왔기 때문이다. 최근 IAEA는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원전을 즉시 해체할 것과 연기해온 원전의 해체 작업에 착수할 것을 강력 권고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해체가 마무리된 원전 가운데 14기가 미국의 손을 거쳤다. 그만큼 미국은 원전해체 선도국이라 할 수 있다. 뒤를 잇는 나라는 독일이다. 독일은 현재 10기의 원전을 해체하며 경험을 쌓아가고 있다. 김 센터장은 “원전해체가 활발해지는 2030년경 시장을 주도하는 것은 미국과 독일이 될 가능성이 높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원전해체 시장에 대비하기 위해 필요한 건 “경쟁력 확보”라고 강조했다. 다수의 원전해체 경험을 통해 데이터를 쌓고 기술을 축적해야 한다는 것이다. 해체 시장 진입이 빨라질수록 경쟁력도 강화할 수 있다고 했다. 특히 한국, 일본, 대만 등 노후 원전을 보유한 아시아 시장이 중요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정부도 에너지전환 정책을 통해 원전해체 시장을 선도할 방침을 제시했다. 아직 확보하지 못한 상용화 기술과 원천기술 개발이 여기에 포함된다. 이에 대해 김 센터장은 “원천기술을 처음 단계에서부터 개발하는 것보다 국제 기술 제휴 등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해외 기술 교류를 통해 지금의 원전 기술을 확보한 것처럼 말이다.
우리의 첫 해체 대상은 고리 1호기다. 정부는 고리 1호기를 해체하면서 관련 기술과 경험을 확보하고 수출 시장에도 나설 예정이다. 김 센터장 역시 이 점을 강조했다. 원전해체 시장이 활발해지는 2030년경 바로 착수할 수 있는 기술을 보유하려면 충분한 준비와 경험 축척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 센터장은 “향후 원전해체가 국가 성장 동력이 될 수 있는 승산이 있다”고 자신했다.
선수현 | 위클리 공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