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동 전 문화부 장관(왼쪽)과 신현택 전 문화부 기획관리실장│정책브리핑
올해는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다. 1919년 4월 11일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를 가진 임시정부가 상하이에서 출범했다. 그 후 대한민국임시정부는 항저우, 전장, 창사, 광둥, 류저우, 치장, 충칭 순으로 각처를 옮겨 다니며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지키고 독립운동의 맥을 이어나갔다. 그중 상하이에 있던 임시정부 청사(이하 상하이 임정청사)는 지금까지 가장 잘 보존되고 있고, 한국 관광객이 상하이에 가면 꼭 한번 들르는 명소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대한민국이라는 민주공화국 100년의 역사를 열었던 상하이 임시정부의 청사가 보존되기까지에는 숱한 우여곡절이 많았다. 그중에서도 2004년 임정청사가 위치했던 상하이시 로만구 일대의 재개발 계획은 청사의 보존과 존립에 중대한 고비가 된 일이었다. 당시 중국 상하이시는 상하이 엑스포를 앞두고 로만구 일대를 전면 재개발하는 계획을 세웠고, 국제 공개입찰로 사업자를 선정할 예정이었다. 민간 업자의 재개발사업 대상에 들어가면 임정청사의 존폐가 어떻게 될지, 한 치 앞을 모르는 위기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었다. 문화부(현 문화체육관광부)는 이 소식을 듣고 대한민국의 뿌리인 상하이 임시정부 청사 지키기 프로젝트에 돌입했다. 지금까지 외부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당시의 상황을 듣기 위해, 문화체육관광부 <정책브리핑>은 상하이 임정청사 보존 프로젝트를 이끌었던 이창동 전 문화부 장관과 신현택 전 문화부 기획관리실장(전 여성부 차관)을 만나 생생한 이야기를 들었다.
▶상하이 임시정부 청사를 보존하려는 우리 정부의 입장을 적극 도와주었던 추이융위안 CCTV 앵커의 자서전│정책브리핑
“대한민국임시정부 청사 지켜라”
-당시 상하이시의 재개발 계획은 어떻게 알게 됐고, 우리 정부의 대책은 무엇이었나요?
=(이창동) 2003년 12월경에 고(故) 노무현 대통령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습니다. 대통령께서는 “상하이 임시정부 청사가 있는 상하이시 로만구 일대가 재개발된다는 정보가 있습니다. 임시정부 청사가 훼손되거나 아예 없어질 위험이 있으니 문화부에서 책임지고 대책을 만들어보세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각 문화부 내 대책회의를 열었습니다. 한 가지 문제는 상하이 임정청사 일대가 재개발되고 임정청사의 보존이 문제 될 수 있다는 소식이 언론에 알려져 국내 여론을 자극하면, 양국의 외교 현안이 되고 문제 해결이 더 어려울 수도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래서 문화부 내에서도 비공개로 핵심이 되는 분들만 논의에 참여했습니다.
먼저 현황 파악에 들어갔습니다. 당시 아직 국제 공개입찰이 공식 발표되기 전이었으나, 개발계획이 확정적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중국은 상하이 엑스포와 베이징 올림픽을 대비해 중국 전역의 현대화와 도시 정비를 진행하고 있었고, 상하이 로만구 일대의 재개발사업도 그 일환이었습니다. 제가 직접 상하이로 가서 임정청사와 주변을 둘러본 바로도 그 일대가 매우 낙후해 재개발이 불가피해 보였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상하이시에 재개발 자체를 하지 않도록 설득하기는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민간 업자의 손에 개발권이 들어간다면, 경제성과 수익성을 우선으로 하는 민간의 속성상 최악의 경우 임정청사의 보존이 어려워질 수 있고, 설사 보존된다 해도 그 주변이 어울리지 않게 호화로운 고층 건물이 들어서거나 상업지구가 된다면 지금도 옹색해 보이는 임정청사가 더욱 초라해질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최선의 방법은 우리가 컨소시엄을 만들어서 상하이시의 국제 공개입찰에 참여해 그 개발권을 따내는 것이었습니다.
임정청사 중심으로 미래지향적 역사·문화의 공간
-상하이시의 로만구 재개발 공개입찰에서 사업권을 따내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셨나요?
=(이) 상하이시의 로만구에서 주관하는 국제입찰이었기 때문에 국제적으로 경쟁력이 높은, 그리고 중국의 도시 재개발사업에 참여한 경험이 많은 해외 업체의 참여가 예상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일차적으로 우리 측의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 우선이었습니다. 먼저 한국토지개발공사와 관광공사가 컨소시엄을 만들어 응찰하도록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개발 계획안이 채택될 수 있게 내부에서 태스크포스(TF) 팀을 만들어 최선의 안을 준비하도록 했습니다. 동시에 공개입찰을 주관하는 상하이시 측에 우리의 입장을 설득하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공개입찰에 제출할 우리 쪽의 개발계획을 위해 신도시 개발의 경험을 가진 전문가들과 저명한 건축가로 TF 팀을 구성해 안을 만들었습니다. 우리의 계획은 임시정부 청사를 중심으로 그 일대를 역사·문화가 숨 쉬는 친환경적 공간으로 만든다는 것이었습니다. 민간기업은 개발이익을 중심으로 한 개발계획을 만들 것이지만, 우리는 공익성을 중심으로 하면서 상하이 시민에게 문화적 복지를 누릴 수 있는 미래지향적 공간을 제공한다는 취지였습니다. 계획 그 자체로 심사위원들에게 높은 점수를 받고자 한 것이지요. 그런 계기가 아니면 그릴 수 없는 아주 이상적인 도시 개발안이었죠. 지금도 그것이 현실화됐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상하이 임시정부 청사│한겨레
임정청사 지키기 위한 조력자들
-당시 누구의 도움을 많이 받았는지요?
=(이) 비공개로 진행된 작업이었지만, 당시 많은 분들이 임정청사를 지키기 위한 우리 정부의 노력에 도움을 주었습니다. 특히 중국 내에서 다방면으로 노력한 분들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고마웠던 이가 언론인인 추이융위안(崔永元)이란 분이었습니다. 그분은 중국 국민에게 가장 영향력 있고 신뢰받는 유명한 CCTV 앵커였는데, 임정청사를 보존하려는 우리의 노력에 공감하고 몇 번이나 베이징에서 상하이를 오가며 우리 측 입장을 상하이시와 공개입찰 관계자들에게 적극적으로 알렸습니다.
여러 가지 노력 끝에 마침내 상하이 시장과의 면담이 성사됐습니다. 상하이 한정(韓正) 시장을 만난다는 것은 중국 측이 우리의 공개입찰 참가를 배제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기에 중요한 신호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상하이 시장에게 임정청사 보존에 대한 우리 정부의 강력한 의지를 전달하고 중국 측이 어떤 계획을 갖고 있는지 알아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습니다.
=(신현택) 민간기업이나 한류스타들의 도움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장관님이 상하이 시장을 만나러 상하이에 방문할 때 당시 가수 장나라 씨와 안재욱 씨, 탤런트 유동근 씨 등 중국에서 인기 있던 한류스타들이 동행했습니다. 그들의 상하이 방문은 언론의 관심을 집중시키면서 상하이시 관계자들에게 임정청사를 지키기 위한 한국민의 의지와 관심을 전달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또 현대자동차 등 민간기업 회장이 상하이를 방문함으로써 은연중에 앞으로의 투자나 교류 등 긍정적인 결과를 암시하기도 했습니다.
-국제 공개입찰의 심의 결과는 어떻게 됐나요?
=(이) 공개입찰이 있던 당일 저는 상하이 현지로 떠났습니다. 한국에서 출발하기 전에 입찰이 시작됐는데, 현장에 먼저 도착해 있던 신 실장에게 연락을 받았습니다. 내부 정보에 따르면 개발부담금 제안에서는 우리가 1등을 했다는 것입니다. 통상 비용 제안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으면 입찰에서 이기니까 기쁜 마음으로 비행기에 탑승했습니다. 그러나 상하이에 도착하자, 예상치 못한 결과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어떤 연유인지는 알 수 없으나 입찰 결과를 발표하지 않고 상하이시에서 로만구 개발계획 자체를 보류시켰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강력한 경쟁회사는 이런 프로젝트를 여러 번 수주한 경험이 있는 홍콩 건설회사인데, 아마 어느 쪽으로 낙찰이 되더라도 상하이시나 중국 정부로서는 큰 부담이 되리라 판단한 것 같습니다.
-당시를 돌아보면, 어떤 감회가 있는지요?
=(이) 저는 장관직에 있으면서 두 번의 큰 국제적인 경쟁을 치렀습니다. 하나는 프라하에서 있었던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를 결정하는 IOC 총회였고, 다른 하나는 바로 상하이 임정청사 일대의 재개발 국제 공개입찰입니다.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전은 모두가 우리의 열세를 예상하는 가운데 3표 차이로 아쉽게 실패했지만, 유감이 없을 만큼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러나 상하이 임정청사 보존을 위한 재개발 국제입찰은 실패하면 안 되는 일이었습니다. 무조건 해내야 했고, 반드시 임정청사를 지켜야만 했습니다. IOC 총회는 공개적으로 진행된 데 반해 임정청사 문제는 비공개로 진행돼 외부에서는 아무도 알지 못했지만, 내부적으로는 피가 마를 정도로 힘들었습니다.
저는 그 일을 위해 베이징과 상하이를 다섯 번 오갔고, 모든 과정을 대통령께 그리고 당시 고건 국무총리에게 보고하면서 진행했습니다. 중국이란 나라의 특수성 때문에 예민한 일이 많았습니다. 그 과정의 몇 개월은 저의 재임 기간 중에 한 과업 가운데 가장 노심초사한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우리에게 상하이 임정청사가 얼마나 소중하고, 그것을 보존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헌신적으로 노력하는지 확인하는 계기도 됐습니다. 정부가 요청했을 때 거부한 사람이 한 명도 없었고, 오히려 어려운 상황에서도 전적으로 도와줬습니다. 심지어 중국인들도 자기 일처럼 도와줬습니다. 그런데도 공개적으로 그 고마움을 표시할 수 없어 죄송한 마음이 컸습니다.
-그 과정을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일까요?
=(이) 2004년 상하이시 로만구 일대 재개발의 국제입찰에 참여했던 전 과정은 그 결과와 상관없이 상하이 임정청사가 대한민국 역사와 정통성에 얼마나 중요한 의미가 있는지 중국 정부에 확인시켜주는 계기가 됐습니다.
그동안 상하이 임시정부 자체가 정치적인 관점에서 폄하된 바가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상하이 임시정부(청사)를 경시한다면 중국 정부에서도 경시할 수밖에 없습니다. 앞으로도 우리가 어떤 생각을 갖느냐에 따라 상하이 임정청사의 위상과 의미는 달라질 것입니다. 과거에 있었던 과정을 증언하는 이유는 지금이라도 그 의미를 되새기고 앞으로 교훈으로 삼기 위해서입니다. 임정청사 보존 문제는 이제 국가보훈처 소관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앞으로 국가보훈처를 비롯한 정부가 국민들과 함께 더욱 잘 보존해주길 바랍니다.
문화체육관광부 <정책브리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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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