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7월 10일 독일 국빈 방문과 G20 정상회의 등 4박 6일간의 공식 일정을 마치고 귀국했다. 이번 방문은 유럽의 맹주인 독일과 양자외교를 한다는 점뿐만 아니라 주요국 정상들이 참여하는 다자 외교무대에 첫발을 디딘다는 점에서 특히 의미가 크다.
문 대통령은 첫날인 7월 5일(현지시간) 앙겔라 메르켈 총리와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대통령과 각각 정상회담을 갖고 방독 이틀째인 6일 오전에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첫 정상회담을 가졌다. 한중 정상회담에서 두 정상은 북한 핵·미사일 도발 대응과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 문제를 놓고 의견을 교환했다.
한중 관계 개선·발전, 평화수호 노력
문재인 대통령은 먼저 모두발언을 통해 “한국과 중국은 경제문제뿐 아니라 북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대단히 중요한 협력관계에 있다”면서 “중국과의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며, 올해 한중 수교 25주년을 맞아 한중관계를 실질적인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로 발전시켜나가길 바라마지 않는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이어 “대통령 취임 후 시 주석이 축하 전화를 했고 우리는 중국 일대일로 포럼에 대표단을 보냈다. 시 주석께 전할 친서를 휴대한 특사를 보냈고,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총회에 내가 직접 참석했다”며 “이렇게 양국 고위급 교류가 활발해지는 가운데 직접 만나게 돼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시 주석은 “중국민과 내게 문 대통령은 낯설지 않다. 특히 장강 뒷 물결이 앞 물결을 밀어낸다는 명언인 ‘장강후랑추전랑(長江後浪推前浪)’을 자서전에서 인용해 정치적 소신을 밝혀 깊은 인상을 남겼다”고 말문을 열었다.
시 주석은 “문 대통령이 당선된 후 바로 통화해서 공통 관심사를 허심탄회하게 말했고, 문 대통령은 특사단을 파견해 일대일로 포럼에 참석시켰고 내게 큰 지지를 보내줬다”며 “또 이해찬 대통령 특사를 중국에 보내 친서를 전달했고 중한관계 개선 발전의 민감한 사안에 대한 내 긍정적 의지를 높이 평가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기회를 빌려 중한 관심사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고자 한다”며 “솔직하게 소통하고 이를 통해 이해를 증진하고 중한관계 개선·발전과 지역 평화 발전을 수호하기 위해 함께 노력하기 바란다”고 강조했다.
이번 회담에는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강경화 외교부 장관,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김수현 사회수석, 박수현 대변인 등이 대거 배석했다. 중국 측에서는 왕후닝 당 중앙정책연구실 주임, 리잔수 중앙서기처 서기 겸 중앙판공처 주임, 양제츠 외교담당 국무위원과 왕이 외교부장, 중산 상무부장 등이 자리를 함께했다. 이날 회담의 당초 예상시간은 30~40분 정도였는데 한 시간을 넘겨 70여 분 동안 이어졌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7월 5일 저녁 메르켈 독일 총리와도 정상회담을 했다.
이날 화두 역시 대북문제였다. 문 대통령과 메르켈 총리는 북핵 문제 해법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고 긴밀히 협력하기로 했다. 북한이 핵을 포기할 수 있도록 더욱 강도 높은 제재와 압박이 강구돼야 하지만 평화를 깨뜨려서는 안 된다고 뜻을 모았다.
문 대통령은 “이 시점에서 제일 큰 걱정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 문제”라고 입을 뗐다. 그는 “특히 어제(4일) 발사한 미사일은 굉장히 고도화한 것으로 한반도와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도발”이라며 “국제적 압박과 제재가 있어야 한다”고 언급했다.
메르켈 총리가 “내일(6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만나 빠른 반응이 자칫 위험한 상황으로 흐를 수도 있다는 것을 얘기해볼 생각”이라고 하자 문 대통령은 “그 점에서는 생각이 같다”며 “북한의 도발(수위)이 높아진 만큼 국제사회의 압박이 강해져야 하지만 제재와 압박이 북한을 완전한 핵 폐기를 위한 대화의 테이블로 이끄는 수단이 돼야 하고 평화 자체를 깨뜨려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북한의 고강도 도발에 대해서는 국제사회와 공조해 최대의 압박과 제재를 가할 필요가 있지만, 이는 북한을 대화의 테이블로 끌어내기 위한 수단이라는 측면에서 선제타격을 비롯한 실질적인 군사적 옵션은 배제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문 대통령은 이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는 경제 문제를 논의하는 회의이지만 북한 미사일의 심각성을 고려해 회원국의 공동결의를 담아내기 위한 의장국으로서의 관심을 보여주기 바란다”고 제안했다. 이에 메르켈 총리는 “G20의 모든 국가가 동의하면 공동성명 채택도 가능하겠지만, 현실적으로 쉬운 일은 아니다”라며 “그러나 G20에서 북한 문제에 대해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다는 건 말이 안 되며, 모든 회원국이 이 문제를 논의했다는 내용과 유엔 결의 및 그 조치에 따라야 한다는 정도의 내용을 의장국 성명에 기술적으로 포함하는 것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 (왼쪽부터) 문재인 대통령이 7월 5일 오후(현지시간) 베를린 총리실 앞 광장에서 열린 공식환영식에서 앙겔라 메르켈 총리와 의장대를 사열하며 얘기를 나누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7월6일 오전(현지시간) 베를린 인터콘티넨탈호텔에서 열린 한중 정상회담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연합
독일 총리실 마당 교민들의 환호성 가득
이날 두 정상은 양국 관계를 다차원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방안도 함께 논의했다.
문 대통령은 “독일은 6·25전쟁 직후 의료지원단을 파견해 25만여 명의 우리 국민을 치료해줬을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산업화와 민주화를 지원해 한강의 기적을 이루는 데 도움을 준 우방국”이라면서 “양국 우호협력관계를 한층 강화시켜나가자”고 말했다. 메르켈 총리는 이에 “실제로 독일은 대아시아 외교를 강화하고 있다”면서 “한국은 아시아 지역에서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중요한 파트너”라고 했다.
이에 따라 양국 정상은 이날 외교장관 차원의 전략 대화를 출범하기로 했다. 이는 양자 교류를 증진하는 차원을 넘어 지역·글로벌 차원의 협력을 강화하는 ‘소통의 채널’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를 통해 북핵과 같은 정치·안보 이슈뿐만 아니라 자유무역과 같은 경제·통상이슈에 대한 협력방안도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회담 직후 베를린 총리실 앞마당에서는 이례적인 풍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두 정상이 만찬을 끝내고 환송장에 나오자 총리실 담장 너머에 모여 있던 교민들이 문 대통령을 연호하며 환호성을 질렀다. 문 대통령은 여느 때처럼 이를 그냥 넘기지 않고 담장 쪽으로 100여 미터를 걸어가 교민들과 악수를 하며 격려했다. 메르켈 총리 또한 문 대통령을 뒤따라가 함께 인사를 나누면서 이국땅에서 대통령과 교민의 해후 장면을 흐뭇한 미소로 바라봤다.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은 “이를 본 총리실 관계자가 ‘이런 장면은 처음’이라고 말할 정도로 메르켈 총리의 문 대통령에 대한 환대가 각별했다”고 전했다.
청와대 측은 “이번 정상회담은 매우 우호적인 분위기에서 개최됐다”며 “양 정상 간 신뢰와 유대관계를 구축하면서 한독 양국관계를 심화 발전시키는 데 이바지했다”고 평가했다.
본격적으로 막 열린 문재인정부 다자외교
문재인 대통령의 이번 독일 방문은 취임 이후 두 번째 해외 방문이다. 문 대통령의 독일 방문은 주요국 정상들이 참여하는 다자 외교무대에 데뷔한다는 점에서 특히 주목을 끌었다.
문 대통령은 방독 첫날인 7월 5일 메르켈 총리와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대통령과 각각 정상회담을 가졌다. 이틀째인 6일 오전에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첫 정상회담을 했고, 같은 날 저녁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초청으로 열리는 한·미·일 정상 만찬회동에 참석했다.
7월 7일부터 이틀간은 독일 함부르크에서 개최되는 G20 정상회의에 참석했다. 회의에서 문 대통령은 각국 정상과 ‘상호연계된 세계 구축(Shaping an Interconnected World)’이라는 주제로 정책 공조 방안을 논의했다. 국제경제 협력을 위한 최상의 협의체인 G20 정상회의는 문 대통령 취임 후 처음으로 참석하는 다자 정상회의다.
문 대통령은 제1세션에서 ‘글로벌 성장과 무역’이라는 주제로 선도발언을 했다. 이번 G2O 정상회의에서는 북한이 전날(4일, 현지 시간)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 발사에 성공했다”고 발표함에 따라 이 문제가 회의 기간 열리는 양자·다자 정상 회동의 주요 어젠다가 됐다.
문 대통령은 한편 회의 기간인 7일 오전에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오후에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첫 정상회담을 갖고, 8일에는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맬컴 턴불 호주 총리 등 10여 개국 정상과의 회담 일정을 소화했다.
박지현 | 위클리 공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