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켓몬고’ 열풍이다. 공원, 거리, 관광지마다 이 게임에 열중하는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다. 네 살배기까지 스마트폰을 들고 엄마의 도움으로 포켓몬을 잡고는 좋아서 소리친다.
지난해 7월 북미 지역에서 첫 등장한 증강현실(AR) 게임 ‘포켓몬고’는 곧바로 선풍적 인기를 끌며 불과 7개월 만에 글로벌 매출액 1조 원을 돌파했다. 모바일 게임 사상 최단 기간이다. 세계적으로 1년 매출액이 그 정도인 게임은 ‘몬스터 스트라이크’ 등 3개뿐인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열풍이다.
아니나 다를까. ‘게임’이라면 세계 어느 나라에도 뒤지지 않는 우리나라에도 그 열풍이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처음 국내에서는?강원도?속초?등?동해안 일부?지역에서만?게임이 가능했음에도?100만?건이?넘는?다운로드를?기록하며 그 지역?공원이나 역 주변?등을 ‘포켓몬고?성지’로까지 불리게 만들더니, 지난 1월 24일 정식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불과 20여 일 만에 800만이 넘는 다운로드 건수를 기록했다.
추운 겨울 한강 둔치나 공원에 사람들이 몰려나오고, 경복궁의 하루 입장객 수가 30%나 늘어날 만큼 고궁에도 사람들의 발길이 많아졌다. 포켓몬이 많이 숨어 있어 그것을 잡기 위해서다. 게임 부문의 실사용자 수에서 압도적 1위는 말할 것도 없고, 앱 사용자 수에서도 국내 전체 9위로 구글과 다음보다 많다는 통계도 있다. 가히 ‘신드롬’이라고 할 만하다.
새로운 신조어도 만들어냈다. 포켓몬을?잡는 데?필요한 포켓볼과?게임 진행에?도움을 주는 아이템을?제공하는?충전소?포켓스톱이 몰려 있는 대도시 시내 중심가를 일컬어 ‘포세권’이라고 부른다.?‘포켓스톱’과?‘역세권’의?합성어다.?마니아들에게는 편하게 집 주변에서 이 게임을 즐길 수 있는 이런 곳에 사는 친구들이 부러움의 대상이다.
현실 세계에 가상 사물이나 정보를 합성해 마치 실제를 더 보완하는 듯한 ‘증강현실’은 세 가지를 갖췄다. 하나는 현실과 가상을 결합시켰고, 실시간으로 상호작용을 가능하게 했으며, 가상의 대상물을 현실 세계에 정확히 배치했다. 어쩌면 증강현실이 도로의 신호등이나 표지판까지 없어도 되는 미래 세상을 만들지도 모른다. 투명 안경 하나만 쓰면 만나는 사람의 신상을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올지 모른다.
당장 ‘포켓몬고’를 보라. 기존 게임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지 않은가. 스마트폰과 PC 안에만 갇혀 있던 가상의 게임을 세상 속으로, 현실 속으로 불러내고 있다. 이제 사람들은 가만히 앉아서 게임을 하지 않는다. 현장을 직접 돌아다니고, 남들보다 좀 더 특별하고 강력한 게임의 즐거움을 얻기 위해 땀 흘리며 뛰어다닌다.
증강현실 게임에 부작용이 없는 것은 아니다. 관광지에서까지 포켓몬을 잡는 데 열중하다 귀중품을 강탈당하기도 하고, 스마트폰만 보며 걷다가 하천에 빠지고 자동차 사고를 내고 남의 집이나 땅을 마구잡이로 침범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상현실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증강현실이 사람들을 다른 차원의 게임, 나아가 문화와 미래로 이끌고 있다는 것만은 사실이다.
사람들에게 익숙하고 인기 있는 캐릭터를 활용한 애플리케이션이 더 많이 나오고 그것이 다양한 현장과 결합한다면 단순한 오락과 흥미 차원을 넘어, 증강현실 게임이 관광과 건강, 교육, 나아가 새로운 커뮤니케이션의 도구가 될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다. 당장 포켓몬을 많이 숨겨놓은 고궁과 공원을 사람들이 많이 찾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다만 그렇게 되려면 게임이 단순한 오락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자연스럽고 재미있는 ‘콘텐츠’ 결합이 있어야 한다. 그러면 포켓몬을 잡기 위해 경복궁을 찾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그곳의 역사도 알고 유적도 살펴볼 수 있도록 만들 수 있다. 놀이는 인간의 본능이며, 문화와 예술의 바탕이다. 그것이 감각적이고 자극적인 쾌락만을 추구하지 않는다면 이보다 더 좋은 ‘수단’도 없다.
▶ 증강현실 게임 ‘포켓몬고’ 열풍을 몰고 온 일본 만화 캐릭터 ‘포켓몬’ ⓒ연합
포켓몬고에서 보듯, 이제 게임은 단순한 오락 차원을 넘어섰다. 과몰입에 대한 우려와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게임이야말로 지역과 인종과 이념을 뛰어넘는 글로벌 현상이 됐고, 특히 디지털 세대에게는 가장 익숙한 여가와 문화양식이 됐다. 게임이 인간의 사고와 활동을 촉진, 확장시키는 세상이다. 현실과 게임이 하나로 결합해 엄청난 부가가치와 파생효과를 창출하는 시대가 됐다.
인공지능(AI)과 함께 이렇게 새로운 문화와 산업의 시대를 열고 있는 증강현실 게임을 우리도 만들어보자는 목소리와 움직임이 나오고 있다. 지도 만들기도, 소프트웨어 개발도구도 중요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캐릭터다. 포켓몬고도 ‘포켓몬’이란 일본의 만화 캐릭터가 있었기 때문에 탄생했다.
그냥 있다고 무작정 되는 것은 아니다. 꾸준히 살아남아 인기를 누려야 한다. 일본은 포켓몬의 장수(長壽)를 위해 끊임없이 다양한 스토리를 개발하여 애니메이션으로 연결하고, 거기에 맞는 다양한 캐릭터의 변주와 변신을 시도했다. 그 결과, 포켓몬은 아이부터 중년까지 아우르는 친근하고 귀여운 존재가 됐다. 만약 다른 캐릭터였다면 아무리 새로운 차원과 기술의 증강현실 게임이라도 ‘포켓몬고’가 이렇게까지 세계적 선풍을 불러오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부럽게도 일본에는 이에 못지않게 오래전부터, 그리고 꾸준히 지금까지도 세계인의 인기를 얻고 있는 캐릭터들이 많다. 도라에몽이나 아톰 같은. 우리보다 애니메이션의 역사가 길고 수준이 높아서만은 아닐 것이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코쿠리코 언덕에서>를 통해 말했듯이 일본에는 ‘낡았다고 함부로 버리지 않는’ 정신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피카츄가 시조인 포켓몬도 처음에는 그리 대단한 캐릭터가 아니었지만 버리지 않고 계속 새로운 상상력을 불어넣어 지금의 ‘포켓몬고’ 주역이 됐다.
▶ 우리 캐릭터 뽀로로는 2003년에 태어나 한때 세계 어린이들을 매료시켰지만, 다시 존재가 작아져 유아용 TV 방송 프로그램에 머물고 있다. ⓒ뉴시스
우리에게도 그렇게 만들 수 있는 캐릭터가 있다. 그러나 진화와 스토리로 생명력을 이어가지 못하고 있다. 2003년에 태어나 한때 세계 어린이들을 매료시켰지만, 다시 존재가 작아져 유아용 TV 방송 프로그램에 머물고 있는 ‘뽀로로’도 그중 하나일 것이다. 답은 언제나 우리 안에 있다.
이대현 |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