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기업 총수의 운전기사에 대한 갑질, 프랜차이즈 본사의 가맹점주에 대한 갑질, 재외공관에서 소속 직원에 대한 갑질, 군대와 경찰에서 상급자의 하급자에 대한 갑질, 정부기관이나 공공기관 등의 산하기관에 대한 갑질, 심지어 직장 내에서 관리자의 평직원에 대한 갑질, 학교 내에서 교수의 학생에 대한 갑질 등 사회 곳곳에서 수많은 갑질이 일어나고 있다. 민간 영역의 갑질도 문제지만, 특히 공공 영역의 갑질은 사회적 파급력이나 공공의 신뢰성 측면에서 중대한 문제다. 따라서 우선적으로 공공 영역의 갑질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소할 수 있는 실효적 장치를 조속히 강구해야 할 것이다. ‘갑질 사회’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인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민낯을 유형별로 소개한다.
▶ 지난 7월 20일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위한 변호사 모임 회의실에서 ‘가맹· 대리점 본사의 갑질·횡포, 참을 만큼 참았다! 을(乙)들의 피해 사례 발표대회’가 열렸다. ⓒ조선DB
민간 영역의 오너형 갑질
“하위 직원에 대한 폭언과 폭행, 특권 의식이 문제”
기업 총수의 갑질 문제가 매스컴을 떠들썩하게 하고 있다. 이러한 갑질의 바탕에는 ‘특권 의식’이 깔려 있다.
지난 7월 13일 이장한 종근당 회장이 운전기사를 상대로 폭언을 일삼았다는 주장과 함께 이 회장의 음성이 담긴 녹취록이 공개됐다. 녹취록에는 이 회장이 운전기사에게 한 적나라한 욕설, 외모 비하 등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이 회장은 이튿날 기자회견을 열고 “저의 행동으로 상처를 받으신 분께 용서를 구한다. 머리 숙여 사죄한다”고 말했다.
2015년 9월 사회적 파문을 낳은 김만식 전 몽고식품 명예회장의 운전기사 폭행 사건은 종근당 사건과 판박이다. 운전기사에게 상습적으로 폭언을 일삼은 녹취록이 공개돼 파문이 일었고, 폭언과 함께 신체 폭행이 있었다는 점이 유사하다. 김 전 명예회장은 운전기사로 일했던 A씨에게 입사 첫날부터 욕설을 퍼붓고 신체 주요 부위를 걷어찬 사실이 밝혀져 국민의 질타를 받았다. 몽고식품 불매운동이 퍼지기도 했다. 결국 김 전 명예회장은 기자회견을 열고 대국민 사과를 한 뒤 사퇴했다. 김 전 명예회장은 벌금 700만 원으로 약식기소 됐다.
최철원 전 M&M 대표의 ‘맷값 폭행’ 사건도 국민을 충격에 빠뜨린 사건 중 하나다. 2010년 최 전 대표는 SK 본사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는 화물 운전기사를 회사 사무실로 불러 야구방망이와 주먹으로 폭행해 구속됐다. 최 전 대표는 운전기사에게 “한 대당 100만 원씩이다. 총 20대를 맞아야 한다”고 말하고 폭행한 뒤 2000만 원의 ‘맷값’을 건넨 것으로 알려져 언론의 뭇매를 맞았다. 서울중앙지법은 최 전 대표에게 1심에서 징역 1년 6개월, 2심에서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2015년 1000만 관객을 모은 영화 ‘베테랑’에서 재벌 2세 유아인이 1인 시위를 하는 트럭 운전사 정웅인을 자신의 사무실로 불러 폭행하고 돈을 준 설정과 유사해 주목을 받았다.
일명 ‘땅콩 회항’으로 알려진 조현아 대한항공 전 부사장의 갑질 사건은 외신에도 보도돼 한국의 이미지를 크게 추락시켰다. 2014년 12월 5일, 조 전 부사장은 뉴욕발 대한항공 일등석에서 땅콩 제공 서비스가 규정에 맞지 않는다며 승무원과 박창진 전 사무장을 무릎 꿇린 후 폭언과 폭행을 했다. 또 항공기를 되돌려 사무장을 내리게 해 여론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조 전 부사장은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공무원의 갑질
“계급 악용한 부당 지시, 따르지 않으면 인사 불이익”
지난 4월 한국국토정보공사(LX·옛 대한지적공사) 강원본부장 A씨는 정년퇴직을 하면서 감사원에 국토교통부 B사무관에 대한 진정서를 냈다. 진정서에 따르면 B사무관은 근로감독을 이유로 강원본부 직원을 정부세종청사로 불러 수차례 진술서를 쓰게 했다. B사무관은 작성된 진술서를 집어던지거나 해당 직원에게 고함을 치며 “본부를 떠나는 인사 조치가 있을 것”이라고 말하는 등 부적절한 언행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직원은 이 사건 이후 수치심에 시달리다 최소 3개월 이상의 치료가 필요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와 불면증 진단을 받았다. 이에 앞서 B사무관은 근로감독을 이유로 내세워 컴퓨터로도 확인할 수 있는 5년 치 지적측량 결과도를 A2 용지 3500장에 출력해 제출하게 하는 등 직원들에게 부당한 업무 지시를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 지시를 수행하려고 3개 지역 본부 직원들은 사흘 동안 밤새 출력 작업을 했다고 한다.
이 사건이 감사원에 접수돼 최근 국토부 감사관실에서도 조사에 착수했고, 반면 LX 직원들은 “공무원과 산하기관의 관계가 아니라 주종(主從) 관계로 느껴질 정도였다”면서 “남들은 ‘신의 직장’이라고 부러워하는데 어디 하소연하지도 못하고 끙끙 앓고 있다”고 전했다.
▶ 지난 8월 8일 공관병에게 궂은일을 시킨 혐의를 받는 박찬주 육군 대장이 국방부 군검찰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고 있다. ⓒ조선DB
박찬주 전 육군 제2작전사령관 부부의 공관병 상대 ‘갑질’ 파문을 계기로 문재인 대통령이 “해외공관을 포함해 공관을 보유한 모든 부처의 갑질 문화를 점검하라”고 지시하자, 재외공관에 근무하는 한국인 행정직원 1300여 명이 그동안 쌓인 불만을 폭발하듯 쏟아내고 있다.
몇 년 전 주 말레이시아 대한민국 대사관에서는 행정직원인 요리사가 대사의 임기 2년 10개월 사이에 여섯 번이나 바뀌었다고 모 언론이 보도했다. 평균 5개월에 한 명꼴로 갈아치운 셈이다. 당시 대사관에 근무했던 한 직원은 “대사 부인이 ‘요리가 입맛에 안 맞는다’며 트집을 잡기 일쑤였고, 요리 외에 온갖 잡무와 잔심부름을 시키고 이를 따르지 않으면 곧바로 내쳤다”고 말했다.
외교부 자료에 따르면 세계 163곳의 대사관, 총영사관 등 재외공관에 근무하는 행정직원을 상대로 한 공무원의 갑질 횡포가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5년간 매년 600여 명의 행정직원이 공관을 떠나 이직률이 19.9%에 이를 정도다. 신분은 무기계약직이지만 공관장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쫓아낼 수 있는 비정규직이나 다름없다.
한편 군대에서 불거진 지휘관 ‘갑질 사태’가 경찰에서도 재연되고 있다. 경찰청은 지난 8월 10일 전국 경찰의 지휘관 부속실 치안 업무 보조요원이나 운전요원으로 근무 중인 의무경찰을 원칙적으로 배제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또 지방청 경무관급 이상 간부와 총경급 이상 경찰서장은 운전요원을 둘 수 없어 출퇴근 시 관용차 이용을 금지했다.
프랜차이즈 본사와 가맹점 간 갑질
“본사 이익만 추구하는 전횡, 언제나 약자인 가맹점주”
▶ 지난 7월 6일 구속 영장이 발부된 정우현 전 MP그룹 회장이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서 나와 서울구치
소로 향하던 중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지자 두 눈을 질끈 감고 있다. ⓒ조선DB
미스터피자 창업주인 정우현 전 MP그룹 회장, 호식이두마리치킨의 최호식 전 회장, 제너시스BBQ그룹의 윤홍근 회장, 이 세 사람은 ‘성공 신화’의 주인공인 동시에 프랜차이즈 갑질 행태의 전형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다.
최호식 전 회장이 지난 6월 3일 여직원 성추행 논란이 발생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직원들의 추가 근무수당을 치킨 교환권으로 지급했다는 보도가 흘러나왔다. 이에 호식이두마리치킨 측은 “사실무근”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고용노동부 조사 결과, 회사 측이 여름휴가비 등 일부 수당을 포함하지 않고 임금을 산정한 것으로 밝혀졌다.
제너시스BBQ그룹은 가격 인상, 갑질 논란 등에 휩싸여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의 1호 타깃으로 지목돼 눈길을 끌었다. 이런 가운데 최근 제너시스BBQ그룹을 설립한 윤홍근 회장이 가맹점에 광고비를 떠넘기려 한 사실이 드러나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를 받고 있다. 윤 회장의 ‘편법 증여’도 논란이다. 수천억 원의 가치를 지닌 회사를 자녀에게 물려주면서 세금은 고작 50만 원만 냈기 때문이다.
정우현 전 회장은 2016년 4월 미스터피자 매장이 있는 건물의 출입문을 닫아놨다는 이유로 경비원을 폭행했다가 그해 8월 상해죄로 벌금 200만 원에 약식기소됐다. 정 전 회장은 가맹점에 치즈를 공급하는 과정에서 친인척 업체를 끼워넣어 ‘치즈 통행세’로 50억 원을 빼돌린 혐의, 가맹점을 탈퇴한 점주들이 치즈를 구매하지 못하게 방해하고 인근에 보복 출점을 한 혐의, 딸과 가사도우미 등을 유령 직원으로 등록해 급여 명목으로 회삿돈 30억~40억 원을 빼돌린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특히 정 전 회장의 ‘치즈 통행세’는 국민을 경악시켰다. 정 전 회장은 2005년 11월부터 2017년 3월까지 12년간 가맹점에 치즈를 공급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동생이 운영하는 업체를 불필요한 중간 유통업체로 끼워넣어 강매했다. 이에 항의해 탈퇴한 가맹점주는 ‘피자연합’이라는 브랜드를 만들었다. 정 전 회장은 “초전에 박살을 내겠다”며 피자연합 매장 인근 60~150m 부근에 직영점을 내고 피자를 전국 최저가에 판매하거나 치즈를 못 사게 방해하는 등 보복에 나섰다. 정 전 회장의 보복에 힘들어하던 한 점주는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했다.
한편 맨주먹 성공 신화를 이룬 총각네 야채가게 이영석 대표의 갑질행태에 대해서도 공정위가 조사에 들어갔다. 지난 7월 26일 SBS 8시 뉴스에 따르면 이 대표는 가맹점주들에게 금품 상납을 요구하고 교육 현장에서 욕설을 하거나 폭력을 일삼은 것으로 알려졌다. 본사 교육에선 욕설은 물론 따귀도 때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 교육을 받지 않으면 가맹점을 내주지 않기에 점주들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교육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또 이 대표는 점주들의 채팅방에 “나 이거 사줄 사람”이라는 글과 스쿠터 이미지를 올리며 ‘조공 압박’을 했다. 갑질 논란이 커지자 총각네 야채가게 측은 누리집에 장문의 사과문을 게시했지만 대중의 반응은 여전히 싸늘하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갑질
“부당 단가, 기술 도용, 계약 해지… 일방통행 빈번”
대기업에 납품하는 중소기업은 단가 협상 시 대기업의 일방통행식 부당 단가 결정에 여전히 시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소기업중앙회(회장 박성택)가 중소 제조업체 300개 사를 대상으로 ‘하도급거래 부당 단가 결정 애로 조사’를 실시해 5월 21일 발표한 결과, 전체 조사 대상 업체의 14.3%가 부당 단가 결정 행위를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부당 단가 결정 행위를 경험했다고 응답한 업체 중 34.9%는 ‘대기업이 일방적으로 단가를 결정한 후 합의를 강요했다’고 응답했다. ‘대기업이 지속적인 거래 관계 보장을 전제로 부당하게 납품단가를 결정한다’고 응답한 비율도 23.3%였다. 대기업이 부당하게 단가를 결정하는 이유로는 ‘과도한 가격 경쟁’(58.1%)이 가장 많았다. 대기업의 가격 경쟁에 따른 부담이 협력업체로 전가돼 중소기업의 수익성 악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중소기업에 대한 공사비 미지급도 대기업의 갑질 사례다. GS건설은 2010년 3월 한국농어촌공사가 발주한 영산강 하구둑 수문 제작 공사를 하면서 수문 제작·설치를 위탁한 중소기업 A사에 추가 공사대금 등 71억 원을 법정기한 내에 주지 않아 과징금을 물게 됐다. 지난 8월 2일 공정거래위원회는 법에서 정한 기한을 넘겨 하도급 대금을 지급한 GS건설에 과징금 15억 9200만 원을 부과했다고 밝혔다.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기술을 뺏는 ‘갑 횡포’의 문제도 한두 해의 일이 아니다. 중소기업이 대기업에 기술이나 아이디어를 제안하면 이를 검토한 뒤 정작 사업은 같이 하지 않고 그대로 기술을 베껴 대기업의 마케팅 유통망을 이용해 성공하는 방식이다. 중기청이 매년 실시하고 있는 ‘중소기업 기술 탈취 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최근 5년 동안 중소기업 8219곳 가운데 7.8%인 644곳이 기술을 빼앗겼다고 응답했다. 피해 금액은 1조 1000억 원으로 기술 탈취 1건당 피해 액수가 16억 8000만 원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게임을 개발하는 A사는 2014년 자신들이 개발한 게임 출시를 대기업에 문의했는데, 게임을 검토한 대기업은 두 달 후 다른 게임 개발 및 서비스에 집중해야 하기 때문에 해당 게임을 출시하기 어렵다며 거절했다. 그러나 몇 달 후 사실상 동일한 게임이 대기업에 의해 일본에서 출시됐다. 해당 게임은 2016년 기준 누적 매출액이 1조 원을 넘었다. A사는 항의했으나 대기업은 이를 무시했다. 공정위에 따르면 2015년 SK텔레콤, SK커뮤니케이션즈, KT, 롯데피에스넷, 이베이코리아, 인터파크, LG화학, LG하우시스, 한전KDN 등에 대해 중소기업 기술 탈취 및 기술 유용으로 14건이 신고됐지만 과징금 및 시정 조치가 이뤄진 것은 LG화학을 포함해 단 2건에 불과했다.
오동룡 | 위클리 공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