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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페이지 내용 : 1 우희덕의 제주 표류기 좁은문 좁은 문을 열었다. 이상한 섬나라의 아저 씨를 만나고 나서였다. 집 현관 안쪽에 있는 중문이 무슨 이유 에서인지 열리지 않았다. 묵직한 목재 프 레임과 두꺼운 유리로 만들어진 미닫이 문. 멀쩡하던 문이 난데없이 꿈쩍도 하지 않아 집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있 는 힘을 다해 문을 옆으로 밀었더니 끽끽 소리를 내면서 한 뼘 정도의 공간이 생겼 다. 무리하게 몸을 밀어 넣었다가 한동안 문틈에 끼어 있었다. 내가 다른 삶을 살 아보겠다고 제주까지 내려와 지금 뭘 하 고 있는 건지 자괴감이 들었다. 가까스로 집에 들어와 문을 손봤지만 진전이 없었다. 혼자 다루기 힘든 크기와 무게였고 세 개의 문이 연동되어 열리는 구조도 단순하지 않았다. 어디선가 부품 도 하나 떨어져 나왔다. 이런데도 수리를 맡길 데가 없었다. 문을 생산한 회사는 문을 닫았고 인테리어 업체에서는 터무니 없는 비용을 부르고 철물점은 그런 일을 안 한다고 했다. 결국 이곳저곳을 수소문 한 끝에 하나의 전화번호가 남았다. 아저씨를 그렇게 만나게 됐다. 그가 낡 은 트럭에 잡동사니를 잔뜩 싣고 나타났 다. 오십대 중반으로 추정되는 나이. 제 주에서 한 번도 보지 못한 남루한 행색에 비쩍 마른 몸. 인도 길거리에서 보던 기인 에 가까웠다. 도무지 무언가를 고칠 수 있 는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우려했던 대로 일이 흘러갔다. 작업이 이해할 만한 이유 없이 지연됐다. 시작부터 그는 스피 커폰으로 한참이나 사적 통화를 했다. 내 가 헛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아내분이신가 봐요?” “와이프예요.” “…….” “이제 일해야 하니까 말 시키지 마세요.” 나는 할 말을 잃고 멍하니 창밖을 내다 봤다. 시간은 계속 흐르고 일은 더 커져만 갔 다. 그가 문을 눕혀 놓고 아랫부분을 깎 아내고 있었다. 말없이 깎고 또 깎고 반복 해서 깎았다. 이건 나무 안에서 조각상을 찾으려는 미켈란젤로나 방망이 깎는 노인 의 환생이었다. 나는 된통 걸린 게 분명했 다. 문은 되돌릴 수 없는 상태가 되고 수 리비는 작업시간에 비례해 눈덩이처럼 불 어나고 있었다. 내가 따지듯이 물었다. “지금 문 고치시는 거죠?” “문 깎고 있잖아요?” “그만 하면 안 될까요?” “문이 반만 열려도 괜찮아요?” 시간은 그 이후로도 한참 흘렀고 나는 자포자기 상태에 이르렀다. 이 모든 게 꿈 이길 바라던 그때, 아저씨가 나를 불렀고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새로 설치된 문이 믿을 수 없을 만큼 부드럽게 움직였다. 눈 길이 닿는 어느 곳 하나 훼손된 곳도 없었 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지 그의 설명 을 듣고 나서야 알 수 있었다. 문이 열리 지 않은 건 문 아래 삽입된 부품, 레일을 따라 움직이는 바퀴가 고장 났기 때문이 었다. 고장 난 것과 똑같은 부속을 구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는 형태가 다른 바퀴 부품을 넣기 위해 문 아랫부분을 세밀하 게 깎고 있었던 것이다. 어안이 벙벙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수리비였다. 그는 “3만 원만 주세요.” 하고는 돈을 받자마자 뒤 도 안 돌아보고 쿨하게 사라졌다. 잠시 마법의 세계를 다녀온 듯했다. 누 구도 선뜻 나서 주지 않던 일을 이상한 섬 나라의 아저씨가 해결했다. 단지 겉모습과 짧은 인상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어 리석은 일이었다. 그는 내 마음 어딘가를 수리했다. 그렇게 닫혀 있던 문을 열었다. 좁은 문을 열었다.  우희덕 코미디 소설가 장편소설 러블로그 로 제14회 세계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벗어나 본 적 없는 도시를 떠나 아무것도 없는 제주 시골 마을에서 새로운 삶을 모색하고 있다. 언제쯤 두 다리 쭉 뻗고 잘 수 있을까? 크고 작은 일들 이 계속 벌어지는 제주 시골 마을에서의삶│우희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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